공부노동자가 가지면 좋은 습관들.

“인문계 대학원생으로서 내 선택 내가 책임지고 한번 생산적으로 살아보자!”는 다짐은 여러 일을 하면서 나를 굴렸던 1년만에 무너졌다. (이 1년에 관해서는 이전 글 “공부 노동자의 밥벌이”를 참조.)하지만 이 시기가 불행했던 시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일들을 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 때때로 번 돈을 맛있는 것 먹는데 쓰면서 스트레스도 풀었다. 자연물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도 배웠다. 단지 나는 과도하게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지쳤을 뿐이다.

그럼에도 다음 일거리에 대한 생각을 그만둘 수 없고, 내년의 생활비와 등록금은 어떤 장학금이나 일감들을 끌어 모아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삶이라면, 그 삶을 조금이라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안팎에서 일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학원생들이 가지면 좋을 습관들이 무엇일지에 생각해보았다.

일/공부 시간을 루틴으로 만들기

먼저, 나는 공부/일을 하는 시간을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처럼 루틴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공계와 달리 인문계 대학원생들은 랩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나 세미나를 듣거나, 파트타임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각자의 재량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가 이런 것이 은근히 나를 옥죄는 요소로 작용한 듯 하다. 그래서 예전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므로, 이 시간을 공부 혹은 일에 투자해서, 나의 생산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문 작업이나 리딩의 진행이 더디다고 생각된 경우, ‘더 하면 될 것’, ’오늘 열심히 안해서’라고 생각하고, 늦은 시간 까지 공부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과제들이 머리 속에 산적한 상태에서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면 그 과제들을 하염없이 붙잡고 늘어지게 되고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린다는 것이다. ‘돈도 적게 버는데 논문이라도 잘 해야지’라는 마음의 대학원생은 엄격한 기준을 갖고 공부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연구실에 나가고, 또 정해놓은 시간이 되면 연구실에서 퇴근하려고 한다. 만약 급한 마감이나 잔업이 있어서 밤에 공부나 일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공간에 와서 한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을 갖는 것과 별개로 일을 대충 언제까지 끝낼지, 대략 몇 시간을 여기에 투자할지 시간을 생각해본다. 그냥 생각이라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공부나 연구도 일처럼 대하는 마인드는, 더디게 진행되는 논문 작업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좋은 동료 연구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좋은 동료 연구자들과의 지속적 만남이다. ‘내 연구하고 나 혼자 벌어먹고 살기도 바쁜데, 동료 만날 시간이 있나?’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내 연구도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아 먹어야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다. 같은 과 안에서도 세부 전공이 여러 개인 경우도 가능한데, 나는 이왕이면 다양한 세부 전공 사람들을 동료로 두고 연구에 관한 아이디어를 들어달라고 혹은 내 글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갑자기 부탁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같이 조금씩 글을 쓰면서 발전시키는 정기적인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료 연구자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은 서로의 연구를 발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학계에서 갖게 되는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다. 연구자로서의 고민이나 어려움은 대체로 연구자 개인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주변에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학과 사람들에게 나의 연구/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삶에 관한 고민을 말하기에는 학과는 너무 좁은 것 같고... 원치 않는 소문이 돌까봐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마음에 계속 담아 두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듣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내게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과 공부로 바쁜 와중에도, 언젠가 함께 연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크고 작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동료가 있다는 생각은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대학교 밖에서 내가 가진 지식으로 할 수 있는게 무엇일지 상상해보기.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난 후에도, 나는 비슷한 종류의 일을 계속해서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연구재단에 지원금 신청을 하고,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하겠지. 그리고 지원금을 타지 못해서 혹은 강의를 하지 못해서 생활비가 모자라면 사교육 시장에서 일을 받아서 하겠지. 그렇게 버텨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대학교 혹은 대학교 부설 연구소일 것이다. 특히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경우, 내가 이 학위를 갖고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는 곳들은 대학교 이상의 고등 교육 기관에 한정될 것이다.

나는 대학교를 좋아한다. 학부 때부터 여러 학자들의 논의를 거쳐서 잘 정리된 지식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그런 주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리고 특정 학문 분야에서 지식을 연구하고 축적하는 일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문학 연구에 대한 당장의 수요가 크지 않고, 앞으로의 수요 또한 불확실하다고 해서 연구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생산하는 기관인 대학교에 대한 국내외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많은 대학교들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학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취업 시장의 판세에 맞춰서 전공들을 개편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문학, 예술 관련 전공들은 없어지거나 통폐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나도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전공에 교수로 갈 수 있는지, 무언가 융합적(?) 지식을 기대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지식을 가르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측불가능한 융합적 지식을 가르칠 그날을 기다리며 그저 버티는 것은 힘들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 사람들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 지식을 원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야 사람들한테 무얼 알려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배운 지식을 나 혼자 머리 속에 굴리면서 발전시키기 보다는, 어떤 포맷으로 잘 전달될지 고민해보고, 함께 나누고 싶다. 

실제로 대학교 밖에서 고등교육의 가능성을 실험한 많은 단체들이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대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강의들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임, 웹소설, 웹툰 등, 현대인들이 자주 소비하는 콘텐츠에 대한 강의를 기획해서 이를 대학교 정규 교육 커리큘럼에 편성하기도 하였다. 전기가오리는 서양철학의 논문들을 번역하고, 전국 각지에서 특정 철학적 주제와 관련된 공부 모임을 진행한다. 후원자들을 위한 설명 원고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학교에서 나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전공이 점차 적어진다면, 나는 결국 이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서 떠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미지의 독자를 생각하면 힘이 나고, 그 수가 적을지라도 열심히 연구활동을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적어도 나는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힘을 얻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진 지식을 갖고 뭘 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금까지 말한 습관들은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거나 지칠 때 무너지지 않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을 도와 줄 수 있다. 공부하는 시간을 루틴처럼 만들고 정기적인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공부하는 것, 공부와 관련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들어서 같이 공부하는 것, 내 연구를 읽어줄지 모를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공부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과 공동체를 만드는 문제이다. 장학금이 필요한데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계획한 기간 내에 졸업을 못할 수도 있고, 공부보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다. 대학원 생활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건강한 정신과 동료들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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