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석사학위 논문쓰기.

사실 나는 석사 학위 논문을 쓴지 이제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제와서 학위 논문 쓰는 것에 관해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번해에 박사 수료를 앞두고 있기도 해서 내가 석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느낀 것을 정리하는게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 사이에는,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학과나, 연구실, 지도 교수의 스타일에 따라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다. "케바케"라는 말은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 것이 그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 방법론에 대한 숙달, 특정한 연구 주제에 관한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것, 대학원 사회의 다른 요인들에도 많이 좌우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물론 전공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논리적 글 전개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케바케"라는 말은 논문 쓰기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정해진 절차나 단계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석사 학위 논문 쓰기를 구성하는 대강의 절차를 말해볼 수는 있다. (1)주제 선정, (2)리서치, (3)목차와 참고문헌 목록 작성, (4)프로포절 작성 및 피드백 받기, (5)논문 본문 작성 및 피드백 받기, (6)심사 받기, (7)졸업이라는 단계를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1)과 (7)만 고정되어있을 뿐, 졸업하기 전까지는 (2)에서 (6)의 단계를 앞으로 혹은 뒤로 수십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2)-(6)은 논문 완성을 위해서 해야하는 투두리스트일 뿐, 시간 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절차는 아니다. 심지어 주제를 정해도 (2) 혹은 (4)를 하다가 다시 (1)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도교수를 잘못 만난다면, 적절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석사 학위 논문 쓰기란 (2)와 (6)의 여러 단계들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다음 학기 졸업을 할수 있을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 멘탈을 붙잡는 것,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 논문의 주장과 관련된 끊임없는 회의에 마주하는 동안에도 이 주제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고, 나의 주장을 설득하는 태도를 한결같이 고수하는 것의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미리 말하자면, 이 글은 논리적인 글쓰기나 주제 선정, 목차 작성에 관한 팁을 제공하는 글은 아니다. 이미 논문 쓰기와 관련해서는 시중에 많은 책이 나와있다. 그리고, 같은 인문학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의 전공 학문의 성격, 즉 대상과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고찰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그래서 어떤 정형화된 목차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학부 때 전공한 심리학과 비교해보면, 인문학 전공의 논문들은 논문의 목차를 구성하고 내용을 짜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약간의 자유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서론에서 선행 연구들을 개괄하면서 특정한 주제와 관련된 추가 연구를 해야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본론에서 이 연구를 위해서 선택한 실험 방법을 서술하고 그 실험 방법에 따라서 실험을 진행했을 때 도출된 결과들을 (통계적 유의미성에 대한 분석까지 포함해서) 제시하고, 이 결과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인간 심리의 특정한 주장(ex. 뇌의 특정 부분과 특정한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 등)을 끌어낸다. 물론 교양 심리학 저술들은 이러한 구조를 따르고 있지 않고, 리뷰 페이퍼 등 논문의 종류에 따라서 이러한 형식에서 벗어난 논문도 있다. 학부생 때라 심리학 논문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실험이 중심이 아닌 심리학 분과(예를 들면 문화 심리학)의 논문 형식은 좀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심리학 논문이 실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그 논문은 실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심리학의 측정 방법과 실험 윤리에 따라서 실험을 어떻게 실행했는지 서술하고, 그 결과물을 해석하는 작업이 주가 되고, 그 내용을 담기 위한 형식을 갖고 있다. (사실 심리학 연구에서의 어려움은 글을 만드는 것 자체보다는, 실험을 설계하고 유의미한 데이터를 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은 실험을 통해서 어떤 주장을 검증하는 것이 주가 아니다. 물론 인문학의 논문들에는 연구 주제와 관련된 주장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분석 및 논증이 제시된다. 하지만, 실험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정형화된 구조를 형성하는 심리학의 논문과 달리, 인문학의 논문에는 그런 큰 축도 없고, 따라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근거를 가져와서 어떤 분석을 제시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정형화된 구조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이 구조를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인문학에서 학술적 논문의 구조란 곧 "연구 주제에 관한 나의 사유의 궤적"을 보여주고, 나의 사유의 궤적이 바로 유사한 연구 주제에 대한 다른 논문과 내 논문을 구분해주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궤적의 끝에 다다랐을 때 도달하는 결론만큼이나, 이 궤적을 출발케한 문제 의식이나, 이 문제 의식의 관점에서 특정한 주제에 대한 논의들이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게 학위 논문이나 학술지 논문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궤적은 내가 이 주제에 관한 기존의 논문들을 얼마나 읽었는지, 어떤 문제의식 하에서 이 논문들을 비판적으로 정리하는 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 된다.

물론 내가 철저히 혼자라는 감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논문의 개요를 떠들어볼 수는 있다. 이 때, 학문과 관계 없는 사람보다는 연구실 동료 앞에서 떠드는 게 낫다. 나에게 조금더 필요한 코멘트 혹은 지지를 받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실 동료 앞에서 논문에 관해 떠들고 그의 의견을 묻는다고 해서, 갑자기 내 논문이 현재 봉착한 문제가 해결되면서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연구를 오래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학술 영역에서의 경험이 나보다 더 많은 선배 연구자들은 내 논문을 읽고 인상 비평에 그치는 말만 하지 않고, 내가 이렇게 논의를 끌어갔을 때 답해야하는 질문들이나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문제점들, 더 구체화되어야할 부분들, 비슷하게 참고할만한 다른 논의를 짚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들을 논문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내 문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선배 연구자가 내 논문에 대해서 한 질문들 전부를 내가 철저하게 논문에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선배 연구자도 자신의 연구 주제와 그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서 코멘트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연구 주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질문을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선배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십수페이지를 새로 쓰면서까지 논문을 갈아엎을 필요가 없을 수 있다. 선배가 너무 바쁘지 않은 상태에서 코멘트를 주었다면, '이런 내용은 각주로 언급하면 좋지 않을까요?', '사소하지만 이런 의문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가이드도 함께 줄 수 있지만, 그런 가이드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그 의견의 경중을 판단해서 반영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배 연구자건 누구건, 남들이 내 논문의 문제점을 타개할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연구실 동료에게 내 논문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은, '학술적 장에서 내 논문이 불러일으킬 반응에 대한 미리보기'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즉, 이러한 자리를 누군가에게 논문 검사를 받거나 논문 쓰기와 관련된 가르침을 얻는 자리처럼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 물론 나도 석사 시절에 이걸 잘 못했다. 항상 숙제 검사를 맡는 아이의 자세로 내 논문을 연구실 동료 및 선배 연구자들에게 보여줬는데, 이게 오히려 생산성에도 안좋았던 것 같다. 연구실 동료나 선배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고 나면, '이걸 다 언제 고치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좌절한다. 그래서 그 좌절에 빠져있느라고 혹은 온갖 자료들을 읽으면서 너무 큰 스케일의 수정을 시도하느라고, 오히려 내 논문의 문제의식을 더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서 글을 다듬고, 필요한 부분에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료와 선배의 의견 중 일부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어차피 수정할 것은 많다. 학술장 미리보기가 요약해서 보여주는 반응들 중에 나한테서 중요한 것만 골라내자.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인문학 학위 논문쓰기를 철저히 나 자신에게만 달려있는 고독한 일처럼 묘사한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찔린다. 안그래도 인문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이들은 나날이 줄어들텐데, 진학자 수를 더 줄이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닐지, 내 미래의 동료들, 학문 공동체의 형성은 요원해지는 것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문학 전공과 관련된 여러 비관적인 전망 및 대학원생의 자조 섞인 농담을 접하고도, 인문학 학위 논문을 쓰는 일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점을 알고도,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은 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일 것이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학위 논문을 쓰는 외롭고 고독한 과정을 겪는 이가 혼자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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