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의 일들: 코로나 시대의 공부노동.

글 제목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사실 4-5월에 내가 겪은 일들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의식의 흐름 주의⚠️ ) 코로나19로 대학가의 많은 교강사들은 온라인 수업 중이다. 이번 학기에 내가 듣는 대학원 수업들도 전부 Zoom을 사용해서 이뤄지고 있다. 학과구성원들이 어느정도 Zoom에 익숙해지자 학회나 학위논문발표같은, 학과의 크고 작은 행사들 모두 Zoom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기획되었고, 몇 개는 실제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온라인 학술대회

나는 그 중 하나인 온라인 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내가 신청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할지 말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신청한 사람들의 의사를 묻고 상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결국 온라인으로 하기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의사를 물을 때, 이런거 저런거 재보고 따져볼 법도 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형태라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았고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간 수 억개의 영상 중에 내 영상 하나 추가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발표를 동영상으로 녹화하는 것은 힘들었다. 찍은 영상을 한 번 보고 나니, 확실히 스크린 속의 내 모습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나는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되는 쩌렁쩌렁 목소리나 귀에 박히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음역대가 다소 낮은 침착한 목소리에 가깝다. 심지어 말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푸는 것도 아니라 엄마는 내 발표 영상을 보다가 3분만에 트로트 가수 영상을 틀었다. 어색한 시선처리, 조금 긴장 될 때 마다 목 쪽으로 올라가는 손을 보면, 내가 동영상 강의 교수자로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레퍼런스로 삼을만한 좋은 강의 영상을 찾아 보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술대회 날에는 발표자와 사회자, 진행을 보조할 조교만 모여서 학술 대회를 진행하였다. 학술대회 들으러 오는 분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학술대회 영상을 시청하였다. 그렇지만 미리 녹화한 영상을 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래서 나는 다시 발표를 했다. 두 번째 발표여서 그런지, 내가 녹화된 영상 보면서 어색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시정해서 그럭저럭 좀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스크린 앞에서 발표를 또 하면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고, 추가 질의 응답 시간에 질문에 답변할 때는 머리를 풀가동해야 했다. 걱정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연구재단 인문학술 연구교수 사업 지원.

학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사업에 신청하였다.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뒷 작업을 이 사업을 통해서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업은 박사학위가 없어도 신청할 수 있는 사업이었는데, 시간강사지원사업이 없어지고 이번 년도부터 새로 생긴 사업(인문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이다. 박사 학위 없이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박사 과정 학생들이 많다는 점, 강사법 개정으로 인해 직업을 잃은 강사들이 많을 것이라는 추정에서 기획된 사업이다.

나는 1년 동안 단기 지원을 받는 유형에 지원했다. 한 학기의 강의 경력이 있었으므로, 강의경력자 트랙으로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일했던 학교에서 나의 직위는 ‘시간 강사’가 아니라 ‘객원 교수’였다. 경력 증명서에는 내 직급이 ‘시간 강사’로 나오지 않았고, 내가 ‘객원 교수’로 일했지만 일한 내용과 그에 대한 보수는 시간 강사와 똑같이 받았다는 내용을 확인해주는 문서(산학협력단장 명의)가 필요했다. 참으로 번거로웠다. 내가 일했던 학교의 산학협력단에 내가 시간강사와 같은 일을 했음을 보여주는 확인서를 요청해 보았지만, 직원 선생님은 바쁜지 답이 없었고, 나는 그걸 붙잡고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행히도 석사 학위와 2015년 이후 게재한 한편의 논문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는 일반 트랙이 있었고, 일단 거기에 지원하였다.

학교마다 객원 교수라는 직위 하에서 하게 되는 일이나 고용 형태가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학교는 객원 교수에게 강의 뿐만 아니라 학생 지도나 논문 연구 등의 학과 일도 맡기기도 하지만, 내가 했던 일은 한 학과의 강의 하나를 맡는 것이고 거의 시간 강사가 하는 일과 비슷했다. 객원 교수나 시간 강사의 차이가 교내에서의 직위/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없고, 단순히 명칭만 달라지는 것이라면, ‘객원 교수’라는 타이틀이 내가 시간 강사를 했다는 것과 구분해서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시간 강사건 객원 교수건 강의는 할 것이고, 강의 경력은 중요한 경력이기는 하겠지만...)

코로나19가 인문학 연구자의 삶에 미친 영향

사실 나의 경우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삶에서 크게 변한 것이 많지는 않았다. (현장 연구나 실습을 많이 해하는 학문의 경우에는 연구 진행에 타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대학교는 온라인으로도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고, 내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사교육시장에는 출근하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일을 받아서 하기 시작했다. 사교육 시장에도 여전히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만드는 컨텐츠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제공할 수 있는 컨텐츠이니,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온라인 강의 및 학습 컨텐츠에 대한 수요가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온라인 컨텐츠 제작 인력들에게 맨땅에 해딩식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서 일거리를 주는지, 거의 만드는 사람이 새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는 식이라면, 그만큼 늘어난 일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화상 강의, 동영상 강의 등 여러 형태의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경험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대학교들이 앞으로도 온라인 강의 컨텐츠를 활용하거나 온라인-오프라인 하이브리드 강의 방식을 차츰 실험해보게 되지 않을까. 인문학의 성격 상, 실습보다는 이론 수업이 위주이므로, 폐교 위기의 몇몇 대학교들은 동영상 강의로의 전환을 통해서 교수자를 감축하고, 예산을 아끼려는 방향을 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문학 관련 파이가 대학교 안에서도 점점 쪼그라들 것을 고려한다면, 좋은 연구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지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cf. 이번 학기는 발제문을 인쇄해서 보지 않았다. 2019년도부터 논문은 인쇄하지 않고 보기는 했지만, 수업에서는 발제문을 받아서 한 학기가 끝나면 제법 두툼한 종이 뭉치가 쌓였다. 요즘은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어 발제문도 인쇄하지 않고 pdf파일, hwp파일 등으로 본다. 아이디어 정리도 더 깔끔 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친환경적이라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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