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월의 일들.
2개월 간격으로 마무리하거나 시작한 일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적인 메모가 있긴 하지만, 그 때 그 때의 관점들로 온갖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펼쳐져 있어서 정리가 안된다. 큰 관점에서 느슨하게 써보려고 한다. (이렇게 홈페이지는 영문CV와 한국어 일기가 섞인 뒤죽박죽 공간이 되어간다.. 📙)
종강과 페이퍼 발표회
6월에는 이번 학기에 들었던 수업들이 종강했다. 이번 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는 페이퍼 발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중간 단계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점검 받는 발표였고, 다른 하나는 완성된 페이퍼를 발표하고 각자 생각을 토론하는 발표였다. 발표에서 사람들과 페이퍼와 관련해서 이야기하면서, 내 주장과 관련된 다른 의문점을 듣고, 그와 관련된 반례들을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좋은 피드백을 주고 받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학문적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세부적인 관심사를 알게 되는 것의 가치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녀는 자신의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을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책을 쓰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저 업무가 끝난 뒤 약간의 자유 시간만 있으면 된다고. (...) 그러다 결국 용기 있는 누군가는 베스트셀러를 쓰게 될 테고, 그러면 그간의 노력을 사회적 출세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 단, 모두가 서로의 책을 읽기만 한다면 말이다! (...) 책을 읽는 것을 형제애나 자매애에서 비롯된,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의무로 간주하는 그녀의 생각이 좋았다."
*올가 토카르추크 저, 최성은 역,『방랑자들』, 2019, 민음사.
"도덕적인 의무"라는 말이 좀 무겁고, "사회적 출세"라는 말은 유니콘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글을 읽는 것이 서로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구절은 마음에 남았다.
최근에 읽었던 학술지 논문 중에 50년 전에 출판된 논문의 쟁점을 정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짧은 글들을 묶어서 낸 논문이 있었다. 켄달 월튼(Kendall Walton)의 "Categories of Art"라는 논문에 대해서 세 명의 학자가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글을 쓰고, 그 글들에 대해서 다시 월튼이 답변을 하는 구조였다. 세 명의 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글들을 차례로 읽으니, 혼자 월튼의 논문을 읽었을 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주장들이 선명해지고, 월튼의 논문 이후에 출간된 비슷한 주제에 관한 다른 논문들도 찾을 수 있어서 유용한 섹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논문을 읽고 리뷰를 하고 또 그것에 답변을 한다는 단순한 구조는 외국 학술지에서 일반적인 형식이라 특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을 빌어서 서로가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좋았다
학위 논문 목차 작성 시작
6월은 페이퍼 작성 및 수업 조교 일 마무리를 하면서 지나갔다. 종강을 하고 나서는 그동안 못 봤던 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사람도 간간히 만나면서 보냈다. 인문계 대학원에서의 여름 방학은,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연구 활동이 계속 이어지는 작은 학기이다. 차이가 있다면, 매주 수업 때 읽어야 하는 리딩 과제가 없으니, 내가 읽고 싶다고 생각한 논문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시를 보거나, 전공과 관련없는 책을 읽는 시간을 약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파트타임으로 출근을 했던 작년의 방학은 이렇지 않았었다. 일을 다녀오면 힘이 들어서 2-3시간은 아무것도 안하거나 별로 집중해서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논문을 읽으면서, 리딩 리스트를 정리하고 학위 논문 목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파일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여기에 생각을 더하고 더하다가 완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목차를 쓰다 보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근거가 부족하고 공부가 더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일단 시작은 했지만 각 장과 세부 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주장까지 더해서 목차를 완성하는 것은 오래 걸릴 것 같다.
자기 컨텐츠를 만드는 것
학기 중에는 여러가지 일들로 바빠서 못했던 지문 집필 일을 방학을 맞이하여 다시 시작하였다. 하지만 방학 동안에도 하릴없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학위 논문 목차 작성과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수정 작업을 같이 하는 중이라서, 지문 집필 일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납품하는 지문은 EBS교재 연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 전공에 관한 내용만 써서는 안되고, 다른 전공까지 최대한 다양하게 써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부 때 배운 것까지 몽땅 끌어 오는 중이다. 그렇지만, 다른 전공의 지식을 건드리다 보면 크게 남는 것은 없다. 연계성을 어찌어찌 만들어내다가, 문득 전공하는 분야의 지식과 전달 방식을 고민하는 것(소주제의 분류, 질문과 쟁점들, 입장들, 핵심 개념의 정리, 내 입장 등)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간혹 든다.
휴식 시간
생활 터전, 일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사건들, 미디어가 나에게 쏟아 붓는 것들 사이에서 정신을 잘 차리고 살아가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가끔씩 사람을 만날 때 최선의 모습을 보이려면, 에너지를 비축해둬야 하고 잘 쉬어야 한다. 올 여름은 긴 장마 때문에 무기력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화나고 속상한 일들도 많았다.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고 말했는데,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신 몸을 움직인다. 작은 요가 매트 위에서 영상 속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속상함, 힘듬, 화남, 이기심 같은 감정이 생각과 상상으로 펼쳐지지 않고 에스프레소 원액처럼 액기스가 되어서 떠오르는 것 같다. 어떤 날은 그걸 그냥 바라보기만 하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내버려두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