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일기: 방학의 나날들. (이제 끝남..)
해먹는 삶의 근황
7월 초쯤에 밥을 해먹기 시작해서, 그후로 2주간은 잘 해먹었다. 하지만 중간에 왼손 손가락 안쪽에 화상을 입어서, 매일 매일 요리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되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넘는 크기로 물집이 잡혔는데, 그 부위가 하필 집게 손가락이어서, 왼손의 힘을 온전히 다 쓸 수 없었다. 요리를 못할 지경은 아니었지만, 손에 이것저것 그릇을 들고 공용 부엌과 방을 왔다갔다 하는 것, 화상 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퍽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화상 입고 난 첫 한주 간은, 버섯볶음 처럼.. 뭔가 밑반찬이 될만한 것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놓고 그걸 주로 먹었다. 두 번째 주에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도 사먹었고, 가끔씩 원래 해먹었던 두부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물집은 터뜨리지 않고 폼이랑 드레싱으로 잘 감싸두었다. 가만히 두면 아프지는 않고 진물이 나오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손을 씻다 보면 물에 닿을 수 밖에 없는 부위라서 하루에 2번 이상은 드레싱을 갈아줬다. 물집은 일주일이 지나자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크기도 조금씩 작아졌고, 1주가 더 지나니까 진물이 자연스럽게 빠지면서 쭈글쭈글한 껍데기만 남았다.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5일정도 지나니까, 더 이상 반창고를 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맨살이 잘 자리잡았다. 완전히 낫는데 거의 3주가 걸린 것 같다.
요리를 하니 화상이나 손을 베는 것 같은 자잘한 상처들도 따라오는 것 같다. 화상에 이어서는 손가락을 베어서..꿰메기도 했다...😇... 왼손 손가락 말단부였고 작은 영역이라 마취 없이 꿰멨는데, 꿰메다가 진짜 말그대로 기절했다. 고통의 크기 보다는, 내가 경험한적 없는 치료였다는 점이 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베인 직후 응급처치도 잘했고 마음의 준비도 다 되었으니 잠깐만 참으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대충 언제쯤이면 이 느낌도 없어지겠지.' 같은 예상이 소용이 없는 영역이라고 느꼈고, 갈증이 심해지고 속이 메슥거리더니 갑자기 꿈의 세계로 넘어갔다. 병원에서 기절한게 천만다행이었고, 또 자상은 화상보다 빨리 치유된다. 자고 일어나면 살이 쑥쑥 붙는다.
어떤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000시간을 투자하라는 말은 너무 계도적이기도 하고, 사실 절대적인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일을 정기적으로 하다 보면, 그 일을 할 때의 행동 습관이나 마음 가짐이 남는 것 같긴 하다.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는 일'도 나한테 남겨주는 것들이 있다. 장바구니를 찢어버리지 않는 식재료의 양과 무게를 눈대중으로 측정하는 것, 이만큼의 재료를 사면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를 대충 가늠하는 것, 식재료가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관심, 화상 응급 처치하는 법 등, 이런 것들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고, 앞으로도 요리한다는 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고 싶다. 그렇지만 새학기가 시작되면, 방학보다 더 바빠질텐데, 매일의 식사를 귀찮아하지 않으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튜터링과 책
이번 방학 때는 학교 기초교육원에서 하는 튜터링 프로그램에 튜터로 참여하였다. 튜터와 튜티가 일대일로 매칭되어서 영어, 수학, 과학 같은 과목을 튜터링해주는 것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과외다. 나랑 매칭된 튜티는 영어 시험 대비, 회화 표현 습득, 혹은 영어관련 교과목의 성적 향상을 위한 튜터링 보다는, 관심있는 주제에 관한 영어 텍스트를 읽고 나중에 영어로 그 내용에 관해서 같이 이야기하는 식의 튜터링을 원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도 재미있게 준비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
같이 읽은 영어 텍스트는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이었다.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재미있게 읽은 참이었는데, 마침 튜티도 페미니즘이 관심있는 주제라고 말해주어서 냅의 책을 영문으로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명랑한 은둔자』가 여러 지면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라면, 『욕구들』은 하나의 챕터가 꽤 길고, 챕터마다 여성의 욕구와 관련된 굵직한 주제들(여성의 욕구 통제 시스템, 엄마와 딸의 관계, 여성의 자기 이미지, 여성의 욕구와 소비주의 문화, 여성과 몸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어서 사회과학서적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냅의 영어 문장은 그의 의중을 파악못할 정도로 복잡하지도 않고, 어려운 표현이 많지도 않다. 가끔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영어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이런 상태나 감정을 이런 표현으로 묘사하고 풀어내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냅이 자신의 경험 및 다른 사람의 경험과 엮어서, 여성의 욕구에 관한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영문책이 나온지는 거의 20년이 다되어가지만, 여성의 욕구가 처한 상황, 특히 식욕과 식이장애의 문제에 대한 냅의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나 튜티나 각자의 일과가 있고, 일주일동안 읽을 수 있는 영어 텍스트 양에도 한계가 있어서 튜터링 기간 동안 인트로 포함해서 2장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사서 다 읽었는데, 냅의 통찰과 문장에 기대고 싶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순간이 잦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너무 좋음'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본 것들.
방학동안은 에세이나 산문집을 더 많이 읽은 것 같다. 부러 "에세이를 읽는 방학"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사놓거나 빌려놓은 책들이 다 에세이이고, 그 책을 거의 다 읽기 전까지는 새로 책을 빌리지 않거나 사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 읽을 책 목록에는 소설이 쌓여가고 있다...)
에세이의 매력은 저자가 자기 주변의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농축되어서 진한 향기를 풍긴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나는 냅의 책에서 냅이 여러 상태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춤과 관련된 은유를 사용하는 것을 몇번 봤는데, 그 은유는 냅이 쌍둥이 언니와의 관계를 묘사할 때에도, 그리고 여성들이 음식을 앞에 두고 하는 내적인 고민을 묘사할 때도 사용된다.
이 음식을 얼만큼 먹어야 죄책감이 덜하지 않을지를 계산하고, 이 음식을 한 입 먹고 나서 내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먹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의 춤. 사람들이 으레 쌍둥이에게 하는 고정관념이 짙은 농담과 인사치레들 ('누가 누구지?', '너무 닮아서 못알아보겠다' 같은 말들)을 피하기 위해서, 암묵적 합의 하에서 자기 자신을 성격, 성적, 패션 등의 여러 차원에서 자신의 쌍둥이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로 정체화하는 춤. (이건 내가 할테니까, 너는 이걸 하도록 해.)
춤은 즉흥적이고 순수하게 자발적인 영역처럼 보이지만, 댄서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 특정한 춤 장르의 법칙, 혹은 개별 작품과 관련해서 합의된 규칙에 대한 인식이 저변에 깔린채 진행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종종 생각했다. 냅도 그러한 춤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이 은유를 사용하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가는 표현이었다.
냅은 자신의 책에서 다양한 은유적 표현들을 사용하는데,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은유가 캘리그라피의 은유였다. 냅은 『욕구들』의 3장에서 산드라 바트키의 이론을 빌려서 여성의 자기 이미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냅은 산드라 바트키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사용한 기입(inscription)의 은유에도 유용한 측면이 있지만, 사실 여성의 실제 자기 이미지 형성 과정의 미묘함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캘리그라피의 은유가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기입의 은유를 매개로 한 전형적인 설명에 따르면, 대중 매체가 마르거나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여성, 각종 피부 관리 용품을 통해서 매끈하게 관리된 피부를 지닌 여성을 여성성의 전형으로 제시하고, 그러한 대중 매체에 노출된 여성들은 자신의 외양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외양을 중심으로 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기입의 은유가 우리에게 상상하게 하는 여성의 자기 이미지 형성 과정은 다소 단순하다.
하지만, 냅은 대중 매체의 영향력이 일률적이지 않다는 점, 여성들은 개인적인 성격이나 배경의 차이로 인해서 대중 매체의 메시지를 각기 조금씩 다른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여성이 어떤 배경에 있는지 여부는, 그 여성의 주변인들(여성의 관리되지 않은 외모를 꾸짖는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과 그가 대중 매체의 메시지에 노출되는 빈도와 방식의 차이를 낳고, 이 또한 그 여성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양상의 차이를 낳는다.
캘리그라피란 다양한 재질의 종이에 다양한 색의 페인트 도구들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고, 이 차이에 따라서 무수히 다양한 캘리그라피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자기 이미지 또한, 그가 어떤 종이(성격과 배경)에, 어떤 도구(여성성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로 자신을 그렸는지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냅의 캘리그라피 은유는, 여성이 형성한 자기 이미지 간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은유로서 아주 적확하다고 생각했고, 은유 표현을 적확하게 사용하는 것 또한, 냅이 세계의 사태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쉬운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냅은 자신의 책에서 자신의 어두운 시절이나 그 시절에 대한 현재의 생각도 솔직하게 밝히는 편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지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겠지만, 또한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했다.
방학 중에, 산드라 오가 영문과 학과장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나왔다고 해서 허겁지겁 보기도 했다. 제목은 <The Chair>인데, 팸브룩스 대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배경으로 그 학과의 영문과 교수인 김지윤이 학과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여러가지 이야기해볼 지점들이 있지만, 지윤이 학문 공동체에 대해서 갖고 있던 소신을 드러내는 애피소드 5가 좋았다. 이 캐릭터도 참 솔직한 캐릭터 같기도 하고...나는 어떤 자리에 있던지 자기 자신으로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