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월의 일들 : 웹페이지 이사, 창의성을 연구하는 이유.
학기 중의 일상
학기 중은 해야할 일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느낌이다. 논문 발표, 투고, 과제 채점, 수업을 위한 리딩, 발제, 쪽글 쓰기 처럼, 연구나 교육 관련 일도 있고, 메일 답장이나 간접비 카드 수령 및 영수증 지출 등.. 같이 정확하게 빨리 처리해야하는 행정 일도 있다. 큰 일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면, 작은 일만큼이라도 그 일이 생겨났을 때 바로바로 처리해서 다음 단계로 밀어놓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큰 일은 완성도의 측면에서 뭔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일단은 하는게 나은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아직은 불완전한 것을 어떻게든 볼만한 것으로 만드는 기술이 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 그런 기술이 늘면 그만큼 여기 저기에서 더 많은 일들을 할 것이다. 연구를 기반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벌이면서 먹고살다가 언젠가는 소진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때가 오면,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밥은 아직까지는 해먹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꽤 힘겹다. 일이 갑자기 몰릴 때는 재료를 준비하고 식사를 조리하는 것이 너무 귀찮고, 장을 보러 나가는 것도 버겁다고 느껴진다. 그나마 내가 배고픈 것은 못참는 사람이고, 식사 후 정리랑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약간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좋아서 꾸역꾸역 해먹었던 것 같다. 장보기도 힘겨운 지경에 이르면, 학교 식당이나 서브웨이에 가서 식사를 사먹었다. 남이 준비해주는 밥은 맛있고 소중하다.
웹사이트 이사
웹사이트 이사는 작년에 노션 페이지로 웹사이트를 열면서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던 일이다. 작년부터 워드프레스, 빅스, 카고사이트, 덩크드... 등 각종 웹사이트 제작 플랫폼을 야금야금 체험해왔다. 카고사이트나 덩크드에는 꽤 괜찮은 디자인이 많았지만, 텍스트 위주인 내 콘텐츠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빅스나 워드프레스는 가격이 저렴해서 좋았지만,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려면 내가 만져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편집 인터페이스가 좀 다루기 어렵다고 느꼈다.
어느 플랫폼에서도 내 맘에 드는 디자인으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서 거의 반 포기 상태였는데, 친구가 스퀘어스페이스로 웹사이트 만들었다는 게 문득 생각나서 스퀘어스페이스에 가입해보았다. 기본 제공하는 디자인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디자인을 편집하고 수정하는 인터페이스도 사용이 편리했다. 블로그에 이미지나 유튜브 영상 임베딩도 깔끔하게 잘 되어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플랫폼들을 체험하고 조사하는 것은 오래 걸렸지만, 막상 이사는 엄청 빨리 했다. 전체적인 디자인이랑 테마색을 정하고, 원래 있던 글들을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2-3일정도 걸린 것 같다. 이 기간 동안은, 밥먹고 잠자는 등 다른 일과하는 시간 빼면 하루종일 웹페이지 생각 밖에 안하는 상태로 보냈다. 이게 모바일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데스크톱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글자 크기가 어느정도가 적당할지, 본문의 너비는 어느정도가 적당할지.. 대충 이런 생각들이었다.
웹사이트를 완성하고 공개한 이후에도 자잘한 수정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었고 처음에 만들때 몰랐던 새로운 기능들을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해서, 한달 내내 조금씩 수정했다. 지금 형태가 가장 마음에 들긴 하지만, 뭔가 새로운 기능을 또 알게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물론 이 차이는 거의 눈에 띄는 차이는 아닐 수도 있음...)
논문 발표 및 투고 : 창의성을 연구하는 이유?
작년에 쓴 페이퍼를 고쳐서 9월 중에 열렸던 학과의 학술 행사에서 발표했다. 내 논문은 지난 1년 간의 수정을 거치면서 너무 길어졌는데, 발표 제한 시간에 맞춰서 축약된 발표 자료를 만드느라 약간 애를 먹었다. 결국에는 발표할 때 슬라이드 몇개를 뛰어넘었지만 그래도 슬라이드에 내용을 잘 정리를 해놓았으니, 넘어간 부분의 논지를 이해하는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10월에 논문 투고할 때에도 분량 제한이 있어서, 이 부분은 결국 논문에서도 빠지게 된다..ㅠㅠ)
내 논문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생각을 보일지가 좀 궁금했는데, 비대면 발표를 해서 그런지 이 부분을 충분히 알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현장에서 혹은 이메일로 질문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나도 조금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다. 창의성을 연구 주제로 삼는 것 자체에 대한 약간의 미심쩍은 반응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러한 반응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독창성이나 창의성 등은 기업 경영이나 자기 계발의 영역에서 가장 많이 소환되는 개념이고, 조직 내부의 문제 혹은 일상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민첩하게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개인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올리 몰드(Oli Mould)는 Against the Creativity라는 책에서 이러한 창의성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Be Creative!"라는 계도적 문구와 함께 개인에게 요청하는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몰드는 개인적인 능력으로서의 창의성에 대한 강조는, 사회 전체의 성장보다는 자기 자신의 성공(혹은 내가 속한 기업의 성공)을 우선시 하는 경향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예술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다니는 것도 그러한 개인적 능력을 기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전시 마케팅의 세계에서는 작가가 가진 아이디어의 독창성과 참신함을 강조하는 언어들이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마케팅 언어의 선택은, 사람들이 예술을 자신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반응한 결과일 수 있다. 일상을 유쾌하게 비트는 예술 작품들과 그 배후에 놓인 작가의 아이디어를 엿보고, 나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 미술관에 가야한다는 믿음이 전시 마케팅의 언어들로 확산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의심스러운 동반자인 창의성을 왜 굳이 연구해야 할까? 이것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창조 경제를 필두로, '창의성'(creativity)과 그와 연관된 개념(ex.독창성, 참신함, 새로움 등등)이 이런 저런 영역에서 마치 만능 열쇠처럼 사용되어왔던 역사를 나도 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들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기가 길었다. 하지만, 창의성과 관련된 2010년대 이후의 철학적 탐구들을 접하면서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창의성이 만능 열쇠처럼 아무데서나 언급되고 개념 자체는 빈깡통처럼 취급된 이유는, 결국 뭔가를 창의적이라고 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한 탐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창의성이 개인적인 성공을 우선시하고 신자유주의 논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전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분석해서 창의성에 적합한 의미를 되찾아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창의성이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전유되었다고 비판했던 몰드도 창의성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에 대한 새로운 탐구 방향 및 규정을 제안함으로써 창의성을 다시 이해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즉, 창의성이 만능 열쇠이자 빈깡통처럼 취급되었던 역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창의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주저해야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창의성의 조건들을 분석하는 철학 분야의 문헌들을 주로 읽었고, 이번 발표에서는 예술 분야에서의 창의성에 한정해서 그 문헌들을 읽고 정리한 창의성의 조건에 대한 생각을 제시해보았다. 내가 논문에서 던지는 질문은, "한 예술 작품을 창의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어떤 조건들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안한 조건들은, 작품이 맥락상대적으로 갖는 새로운 양식, 그러한 새로운 양식을 성취함으로써 갖는 예술적 가치,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행위자성 세 가지이다. 예술가들이나 작품들을 많이 소개하기 보다는, 이 조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 조건들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글을 썼다. 일단 논문은 썼지만, 내 글이 신자유주의가 창의성을 전유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렇게 전유되는 창의성이 더 매혹적으로 보일지도.) 그래도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면 좋겠고, 앞으로 이 주제에 관한 더 생각을 발전시킬 동력을 얻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