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월의 일들: 7월을 시작하는 마음.
학기 마무리와 방학 시작
6월은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달이다. 내가 듣는 수업의 페이퍼를 쓰고, 내가 조교하는 수업의 마지막 과제/시험의 채점을 하고 점수를 정리하는 달.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 보면, 한 달이 눈깜짝할새 가버린다. 한달을 그렇게 바쁘게 보낸 다음 7월의 첫주는 약간 설렁 설렁한 태도로 보낸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빌려놓았다가 읽기도 하고, 봐야겠다고 생각한 전시들을 보러다니기도 한다. (종강하고 읽을 책과 볼 전시 리스트를 적어놓는 것은 학기말의 작은 즐거움이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다시 방학기간동안 해야할 일들을 시작할만큼의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다.
이번 방학에는, 다음 학기에 투고할 논문작업을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학위논문 구성에 대해서도 조금더 생각을 발전시켜보는 것이 목표이다. 2학기가 되면 수업들을 듣고 수업조교도 해야 하고 논문 발표 및 투고도 예정되어 있어서, 학위 논문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일을 아예 안하고 논문 쓰기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한다 해도, 방해 받지 않고 논문 구상이나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어느정도는 확보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논문 기획이나 쓰기는 통근시간에 영어표현 외우는 것처럼, 일과중에 짬짬이 시간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 심사받는 시점되면, 자동적으로 온 종일 논문 생각만 하고 있게 된다. 심지어 길가다가 메모장을 열고 논문과 관련된 생각이 떠오른걸 받아적게 된다..🥲...)
조리하는 삶
7월부터는 조리도구를 집에서 챙겨와서 직접 식사를 조리해서 먹고 있다. 밥과 국, 여러가지 반찬들이 있는 그런 식사는 아니고... 대체로 한 접시나 한 그릇 안에 담길 수 있는 간단한 요리들이다. 밥, 국, 여러 가지 반찬들로 준비된 식사는, 넓은 조리 공간이나 충분한 환기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주거 공간에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만약 내가 매끼를 그렇게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요리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만든 요리들은 누군가에게 대접할만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삼삼한 맛을 즐기는 내 입맛에는 잘 맞는다. 점심에는 대체로 샌드위치나 파스타를 해먹고, 저녁에 밥을 먹는다. 모든 식사에서 최대한 고기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요즘에는 채소 기반으로도 잘 챙겨먹을 수 있는 식단들이 많이 있어서, 그 중에서 자주 해먹을만한 것을 몇개 골라서 시도해보고 있다. 채소의 보관이나 관리를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사서 잘 씻어서 보관해놓고, 일주일동안 이걸 소진하기 위한 메뉴들만 돌아가면서 준비하니, 채소가 상하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고기나 해산물보다 냉장고의 자리를 덜 차지하고, 냄새도 덜한..! 좋은 식재료이다. 요리를 해먹다보니 냉장고를 체크하면서 재료의 상태를 확인하고, 언제쯤에 새로운 재료를 사러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요리에는 직접 조리를 하는 것뿐만아니라 이 조리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일도 포함된다. 재료랑 레시피가 다 준비된 상황에서 내가 몸만 들어가서 조리하는 것이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요리를 직접 하는 것도 일이지만, 일주일간의 요리 계획을 짜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 노동이 신경쓰이거나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아웃소싱해왔던 삶의 필수 영역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실험이라고 생각되어서 즐겁게 하고 있다.
모든 노동이 안전한 사회
주거나 식사 등과 관련해서 나의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큰 불편함 없이 매끄럽게 굴러가는 이유는, 대부분 그러한 불편함을 나 대신 직접 해결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노동자들(지금은 해먹고 있지만 계속 매 끼 해먹지는 않을것...), 공용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해주는 노동자들, 방안의 비품이 고장났을 때 수리를 해주는 노동자들, 내가 근처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들을 배송해주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내 일상 생활이 불편함 없이 잘 굴러갈 수 있다. 내가 학생용 기숙사에서 살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에 더 의존하기도 하겠지만, 도시를 떠나 자연인으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현대인들의 일상도 아웃소싱된 채로 굴러가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식사나 식재료 배달, 각종 생활용품 배송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내가 밖에 내다놓은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누군가가 있다. 수거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 빌딩의 계단이나 화장실 등은 아침마다 누군가가 청소를 하기 때문에 깨끗하게 유지된다.
나는 도시에 살고 있고 이런 노동들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이왕이면 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조금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일의 단가를 후려치기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9910.html) 내 생활을 편안하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생활의 일부분을 아웃소싱하는 삶의 방식을 바꿀 수가 없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는, 결국 나와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더 안전한 사회일테니까.
이번에도 교내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죽음의 배경에는 청소 노동의 업무 강도를 이해하지 않고 과도한 업무를 배정한 것이 있었다. 이런 일의 원인은 대체로 비슷했던 것 같다. 청소 노동의 고됨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분장. 보통 청소 노동자들이 청소하는 공간은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ex. 화장실, 공용 부엌)이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하루동안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층마다 공용 공간들이 있을텐데, 각 층의 공용 공간들을 다 혼자 청소하는 상황에서 제초 작업이라는 추가적인 업무가 더해진다면, 정말 막막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대부분 청소 노동자들은 나이가 젊은 편은 아니다. 나이가 젊다고 해도 그렇게 계속 고강도의 노동을 하면 몸이 축나기 마련이다. 청소노동자에 어떤 인식을 가졌기에, 청소 노동 자체에 얼마나 무심한 체계였기에 이런 업무 분장이 이뤄진 것일까. 나의 바람과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또 확인할 수 있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071404011)
내가 살고 있는 대학원동 기숙사의 시설 관리나 청소 노동은 외부 업체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도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 업체를 통해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직접고용에 비해서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비용을 절감하면서 함께 악화되는 것은 결국 이들이 일하는 환경과 노동 조건이다. 학교는 외부 업체와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문서 상으로는 그 업체의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하다가 사고가 나도, 학교가 그 사고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더불어 이들은 학교에 고용된 노동자들도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이 외주 노동자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신경써줄 필요도 없다. 시설관리나 청소 노동을 외주화를 하는 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비용의 절감은 그 업체에 고용된 사람들의 건강을 갈아넣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숙사는 산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 걸을만한 길과 벤치가 꽤 있다. 학교로 가다보면 기숙사 주변길을 산책하는 대학원동 청소 노동자분들과 가끔 마주친다. 그 분들은 때때로 아무도 없는 기숙사 로비의 공용 공간에 앉아서 잠깐의 커피 타임을 가지시기도 한다. 단순히 걷기 좋은 날씨여서, 밖을 산책하는 것일까? 단지 공용 공간의 정수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커피를 드시는 것일까? 그보다는 혼자서 눈치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제대로된 휴게 공간이 기숙사 내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