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의 일들: 천문학자의 일과 과제 채점.
연구자가 나오는 에세이
나는 연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좋아한다. 연구자가 소설에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연구자가 쓴 에세이라고 하면, 전공과 상관없이 마음이 간다. 그렇게 찜해놓았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연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갖는 전형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 무엇이든 활자 읽기를 좋아하는 것. 주요 개념이나 논변을 정리하고, 일차적 자료를 해석하는 저변작업을 지루해하지 않고 하는 것.
어떤 학문이든, 개념이 사용된 정확한 의미와 맥락을 밝히는 일, 논의 맥락이나 그 학문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고려해서 주장과 논변의 타당성을 살피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책의 저자는 산 중턱에 있는 천문대에 가서 별을 관측하는 시간보다 관측 자료를 해석하고 논문을 읽느라고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고 말했는데, 나도 실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논문을 읽고, 메모를 하고, 질문거리가 있으면 노트에 정리를 해보고, 또 다음 논문을 읽고.. 메모랑 질문거리들이 쌓이면 내가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가끔씩 학술지의 최신 버전을 확인하고 어떤 논문들이 나왔는지 체크하고...그런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가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책의 저자가 자신은 강의를 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부분이었다. 이 말은 책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저자가 출연한 팟캐스트에서 들은 것인데, 예상치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문학 연구자의 생업은 강의이다. 강의가 곧 경력이자 주요 밥벌이 수단이고, 인문학 전공의 고학력자들은 대부분 수많은 강의직들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강의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연구일 것 같은데, 사실 연구도 지원기간이 정해져있고, 그게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사업에 지원해서 선정이 되어야 연구가 지속되고 내 생계도 이어질 수 있다. 대학교나 연구소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강의 없이 연구만으로 먹고사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어서, 나는 강의를 항상 디폴트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연과학은 인문학보다 지원할 수 있는 연구 과제의 수가 더 많으려나..? 나도 모르는 것이 많은 햇병아리 연구자이고, 그래서 '이공계열은 뭐 인문계열보다 더 낫겠지..! '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천문학자』를 읽다보면,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특정한 학문이 연구의 데이터를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그 학문을 지원하는 연구 제도가 어떤 것이 있는지, 그 학문이 어떤 산업과 긴밀하게 엮여있는지, 그래서 어떤 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그 학문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이 차이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디테일들도 있지만(특히 나는 천문대에 별보러 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그런 세부적인 차이들을 흐릿하게 만들고, 학문이라는 활동을 직업삼아서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꼴을 생각해보고 싶다. 자신이 하는 학문을 특별히 낭만화하지 않고 그 일을 어제보다는 조금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직업인으로서의 마음 가짐, 저자가 가진 연구자로서의 삶의 태도에 마음껏 공감하고 소중하게 바라보고 싶다.
글쓰기 과제 채점과 그 외..
4-5월 동안은 두 번의 글쓰기 과제 채점을 했다. 학생 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점수만 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채점했는지 코멘트도 남겨야 해서 품이 드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학생들의 글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에는 전공 수업이라고 해도, 글을 쓰는 과제보다는 시험이 더 주요한 평가 방식이었다. 그리고 글쓰기 과제가 있다고 해도, 내 글이 어디가 괜찮고, 어디가 별로인지, 어디를 보완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세한 코멘트를 받은 적이 없었고, 그게 아쉬웠었다.
지금은 시간 강사의 시간당 페이와 강의를 준비할 때 드는 품이 얼만큼 되는지를 대략 이해하고 있다. 그 수업의 글쓰기 과제에 대한 코멘트를 전담하는 조교가 따로 없을 경우, 학생들의 글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코멘트를 하는 일은 강사의 선의와 희생정신에 기대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선의와 희생정신은 강사가 당연하게 갖춰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인문계열 교양이나 전공 수업에서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텍스트를 이해하는 문해력과 더불어 그렇게 이해한 텍스트를 재료 삼아서 나의 주장과 논리을 설득력있게 펼치는 학술적 글을 쓰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글쓰기 과제가 있는 인문계열의 교양 혹은 전공 수업의 경우, 나처럼 이런 일만 전담하는 조교들이 꼭 한명씩 배정되면 좋을 것 같다.
학생들 과제 채점 외에도 수업 듣고 내가 학생으로서 해야하는 과제들을 하고 논문들을 읽고,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보통의 학기중을 보냈다.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 비엔날레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거의 모든 전시관의 전시들을 다 볼 수 있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본전시관 말고도 국군광주병원이나 광주 극장 같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공간들을 활용해서 전시를 하기도 하는데, 광주 양림동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전시를 했다. 아트폴리곤은 하나의 큰 건물로 이뤄져있는게 아니라, 옛날에 지어진 여러 개의 작은 건물들을 이용하는 전시장이고, 건물 내의 공간도 하나 혹은 두개로 그렇게 많지도 않고 크지도 않았다. 여기는 공간 하나를 거의 한 명의 작가의 작업으로 채우는 구성이었는데, 뭔가 공간과 어울리는 작업이 잘 배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이 생각을 뒷받침할만큼 전경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작업 근접 샷만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