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미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1): 예술과 관련된 주제들.(22.02.07 책 업데이트)
분석미학은 예술작품의 생산, 감상, 비평 및 예술 작품과 관련된 제반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분석미학의 출발점은 '미'(beauty)를 비롯해서 비평적 술어들이 포함되는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한다는 언어철학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분석미학은 비평적 진술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예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둘러싼 의문들을 명료하게 다듬고 그에 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예술과 관련된 현상들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한다는 넓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분석미학의 주요 주제들은 다음의 큰 카테고리들로 나눌 수 있다.
🗂 예술의 정의와 예술의 범주 : 예술을 필요 충분 조건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예술의 정의가 실제로 우리가 예술에 관해서 말하는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예술에 는 회화, 조각, 낭만주의 음악, 락 음악 등 개별 작품들을 분류하기 위한 다양한 범주 (category)가 존재한다. 그러한 범주를 구분하는 것의 의의는 무엇인가? 작품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감상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술의 존재론 : 개별 작품들이 존재하는 방식에는 장르별로 차이가 있다. 판화나 사진은 여러 개의 에디션을 가질 수 있다. 음악이나 연극은 공연을 통해서 존재할 수도 있지만, 녹음한 음원 파일 혹은 영상을 통해서 재생산될 수 있다. 반면, 회화는 오직 그 한 작품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감상자가 스크린을 터치하거나 키보드나 스틱을 조작함으로써 매번 다른 화면이 만들어지는 디지털 예술은 어떠한가? 감상자가 연주를 통해서 음악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디지털 예술에서는 연주자 없이 감상자가 작품을 조작하면서 감상한다. 감상자의 개별적인 작품 감상이 연주처럼 여겨질 수 있는가? 이러한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음악과 유비해서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술과 감정 : 소설, 회화, 음악, 조각 등의 예술 장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
음악을 분석할 때, 사람들은 그 곡이 어떤 감정을 표현한다는 식으로 흔히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음악이 실제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주체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음악이 특정 감정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악이 감정을 가질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마치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거나 분노한다. 실재하지 않는 인물에 대한 감정 반응은 흔히 역설적이라고 일컬어진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의 대화와 그가 겪는 사건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가? 상상된 것들에 대한 감정적 반응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가 소설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감정하는 경험은 슬픔이나 분노 등, 즐거움과 거리가 먼 감정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에게 역겨움이나 불쾌함 같은 감정을 고의적으로 유발하는 작품 또한 현대에는 빈번하다. 인간에게 즉각적인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들에 대한 노골적인 재현을 통해서 역겨움을 유발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는 작품들을 사람들이 피하지 않고 감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술의 가치 : 우리는 왜 예술을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가? 예술 작품은 (소설 같은 텍스트 중심의 예술을 제외하고는) 감상자에게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며, 작품의 가치도 작품이 감상자에게 제공하는 감각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것으로 일컬어진 다. 하지만 이 입장의 문제는, 정확하게 동일한 종류의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원본과 그에 대한 위조품 사이의 가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관적으로 원본을 위조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작품이 제공하는 경험은 작품의 감각적 특징에 대한 경험으로 한정되지 않는 경험, 작품의 기원이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지식의 도움으로 볼 수 있는 예술적인 특징들에 대한 경험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다. 예술에 대한 경험이 이처럼 감상자의 배경 지식과 사유 능력을 동원하는 경험으로 확장될 경우, 예술이 감상자의 인지적 성장에 기여함으로써 갖는 인지적 가치, 작품에 내재된 관점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근거한 도덕적 가치 또한 작품의 가치로서 고려해볼 수 있다.
📚 예술과 지식 : 허구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작품, 가령 소설 등으로부터 세상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는 직관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소설로부터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보통 작품이 묘사하는 세계에 관한 상상을 지식이 나 이해의 원천으로 언급해왔다. 소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식이나 이해에는 어떤 것들 이 있는가? 작품이 묘사하는 세계에 관한 상상은 어떻게 감상자에게 지식이나 이해를 제공할 수 있는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소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가?
⚖️ 예술과 도덕 : 예술 작품이 특정 장면이나 인물을 묘사할 때의 관점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상상적 저항'(imaginative resistance)은 특히 내러티브가 있는 예술에서 비도덕적인 관점에 따라서 장면과 인물을 상상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한 작품이 감상자에게 '상상적 저항'을 유발하는지 여부가 한 작품의 예술로서 가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 라면, 예술 작품에 대한 윤리적 비평의 영역을 학문적으로 구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상상적 저항'은 어떤 경우에 성립하며, 작품의 도덕적 측면을 작품의 가치 평가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술에 대한 해석과 비평: 비평(criticism)과 해석(interpretation)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토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작품의 주제와 부분의 의미에 대한 파악) 해석하는 것이 곧 비평이라고 말했지만, 캐럴은 비평의 핵심은 한 작품을 이유에 근거해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때 평가의 근거가 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작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다. 비평의 핵심이 평가라면, 작품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마련될 수 있는지가 비평과 관련된 또 하나의 쟁점이다. 작품의 해석과 관련된 논쟁점은 작품의 의미가 불분명할 때, 작가 의도와 작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관계이다. 비어즐리와 웜샛이 반의도주의의 입장에서, 작가의 의도는 작품의 의미 해석의 기초가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 이후, 온건한 의도주의, 가설 의도주의 등, 예술가의 의도와 의미의 관계를 다루는 다양한 입장이 등장하였다. 이 중 어떤 입장이 가장 설득력있게 우리의 작품에 대한 해석 관행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사진, 영화, 게임에 대한 철학 : 사진, 영화는 대상의 모습과 움직임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짐에 따라서 등장했다. 이 때 사진, 영화는 제작방식과 관련해서 특별하게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예술과 구분되는 특성을 갖는다고 일컬어져왔다. 그렇다면 사진 혹은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진, 영화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에만 해도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사진과 영화는 예술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예술적 평가의 대상이 되곤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게임에 대해서 비슷한 질문을 던 져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게임에서 예술적이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주제 분류는 예술을 중심으로 한 분류이고, 미적인 것(aesthetics; 미적 경험, 미적 태도 등), 재현(representation), 허구(fiction), 가상성(virtuality), 창의성(creativity), 상상력(imagination) 등 위의 질문들과 관련해서 중요한 함축을 갖는 개념들에 대한 연구도 분석미학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
다음은, 여기에 제시된 주제 및 질문들과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국내의 도서 및 논문들이다.
강선아, 신현주, 윤주한, 이해완, 최근홍, "분석 미학, 무엇을 어떻게", 미학 , 2018.
: 분석미학의 기존 쟁점들을 갈무리하고 최근의 논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논문이다. 이 글에서 나온 많은 주제들과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도서와 논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매튜 키이란 저, 이해완 역, 『예술과 그 가치』, 북코리아, 2010
: 예술의 가치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질문들을 다루는 책. 예술의 가치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원작과 위작의 문제, 미와 추의 문제, 예술과 지식, 예술과 도덕 등의 주제들을 차례로 다룬다.
노엘 캐럴 저, 이해완 역, 『비평철학』 북코리아, 2017.
: 캐럴의 비평과 관련된 입장을 담고 있는 책, 캐럴은 평가의 보편적 기준과 관련해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주로 비평과 관련된 쟁점을 다루 지만, 작품의 해석과 작가의 의도의 관계와 관련된 그의 입장도 찾아볼 수 있다.
제럴드 레빈슨 편집, 김정현 신운하, 신현주, 이종희, 최근홍 역, 『미학의 모든 것』, 북코리아, 2018.
: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에서 나온 옥스퍼드 핸드북 시리즈의 미학 버젼(Oxford Handbook of Aesthetics)에 대한 번역본이다. 분석미학의 핵심 개념과 관련된 쟁점들 이 항목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사전처럼 참고하기가 좋다.
마거릿 P. 배틴 외 저, 윤자정 역, 『예술이 궁금하다』, 현실문화, 2004.
: 예술의 정의에서 시작해서 , 미와 미적 경험, 의미와 해석, 예술의 창조를 다룬다. 사례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교재로 사용하기 알맞을 책. 관련된 동시대의 사례들을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이젤 워버튼 저, 박준영 역, 『그래서 예술인가요?』, 미진사, 2020.
: 본질주의, 반본질주의, 제도론, 역사적 정의 등, 예술의 정의에 관한 논의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과, 이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쉽게 정리하고 있는 책. 워버튼이 생각하는, 예술 정의에 관한 이론이 갖는 의의도 말미에 제시하고 있다.
이해완 저, 『불온한 것들의 미학』 21세기 북스, 2020.
: 분석미학의 논의들을 기반으로, 위작, 나쁜 농담 등 논쟁적인 영역에서 무엇이 쟁점인지, 그 쟁점에 관해서 어떤 주장을 어떤 근거로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책. 강의를 기반으로 만 든 책이어서 배경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장마다 Q&A 페이지도 있어서, 읽으면서 들 수 있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