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월 일기 : 바쁜 마음과 잘 살고 싶은 마음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기.
더운 시기가 다 지나갔다. 9월에 중순까지는 좀 더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마룻바닥에 누우면 시원하고 또 피부도 들러붙지 않는 계절이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시원하고, 한낮에 부는 바람도 시원해서 걷기도 좋다. 이 계절에도 이곳저곳 걸어봐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
8-9월 동안에도 짬짬이 여기저기 다녔다. 좀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 이벤트들은 다 플랫폼 달에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플랫폼 달은 여성환경연대가 운영하는 공유공간인데, 이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한 다음에 이 공간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가끔 방문했다. 맛있는 짜이와 콤부차, 비건요거트가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공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고 밥도 같이 나눠먹다가 공간의 운영자들과 안면도 트게 되었다. 8월의 어느 날에는 알맹상점에 들렀다가 그 공간에서 전에 먹었던 쿠키가 먹고 싶어서 방문했는데, 갑자기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그날 저녁에 일본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공간에서 식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차피 저녁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같이 먹기로 했다. 일본에서 온 두 명의 손님들은 유기농 농장 쇼 팜의 스태프인 안나와 기후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즘, 역사, 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에미였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온갖 주제, 이번 한국 방문이 어땠는지, 두 나라의 역사, 드라마, 책, 작은 정당, 그 외에 특정한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서 두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인식을 갖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일본사람의 시선에서 한국의 역사 속의 사건들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듣는 것도 신선했고, 일본에서 한국책이 많이 번역되고 널리 읽힌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경험과 관점을 식사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서 접하는 것은, 강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를 전해 듣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간의 낙차가 대화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통역은 그 대화의 장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고, 통역에 드는 시간은 나에게도 대화의 내용을 곱씹어 보고, 또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연과 통역을 하는 경우, 모든 일들은 이 행사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일어난다. 그런 행사의 경우에는 통역자의 발음도 중요하다. 원어민의 발음과 최대한 비슷하게 또렷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그런 기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행사의 진행을 매끄럽고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하기의 표준을 준수해야 하고, 일정한 속도가 유지되어야 하다 보니 그 표준의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혹은 원어민 말하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영어 발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내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은 것에 다소 위축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발음기호 따라서하기만 하면 되지, 원어민 같은 발음이 뭐가 중요하냐… 이런 생각이다. (물론 발음 기호 따라서하는 것도 교정도 필요하고 매우 어려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영어권 국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은 경우, 어쩔 수 없이 모국어의 억양이 영어 말하기에도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지우려는 노력을 꼭 해야만 할까? 해외에는 그런 발음을 꼬투리 잡아서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기준에 맞춰서 나를 고쳐서 ‘흠결 없는 상태’로 만든 다음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는데’ 내 시간을 쓰는 것도 아깝다. 그것도 다른 의미에서는 지는 것 같은 느낌. 그냥 내 완성되지 않은 발음을 마구 쏘아대고 싶다. 영어에도 방언이 있어서 아마도 특정한 지역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사람들은, 원어민이라고 해도 표준적인 영어를 구사하지 못할 수 있다. 마치 경상도 방언 구사자가 서울의 방언을 익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표준적인 영어 발음을 위해서 연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표준적인 언어로 원활하게 소통하는 자리보다, 서로가 서로의 모국어 억양, 지역 방언의 억양이 남아있는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들이고 그리고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옮겨주는 시간이 허용되는 자리가 더 소중하고 또 밀도 있는 소통을 한 자리라고 느낀다. 무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일본의 지역 문화에 생태주의가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꼭 쇼 팜에 방문해야지.
그 외에도 플랫폼 달에서 참여한 책 읽기 모임에서도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읽은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만두를 만들어먹는 모임이었는데, 사고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만두도 만들어 먹으면서 조금 더 깊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사람들 사이의 연결은 디지털 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갖는 장점들도 분명히 있지만, 물리적인 공간에 일어났던 일들, 대화는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다. 예를 들면 밥을 같이 준비하고 나누어 먹는 행위는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없으니까, 이런 모임뿐만 아니라 누구 집에 초대받아서 뭔가를 먹은 경험은 지속력이 강하다. 그 사람이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 주었는지, 그 집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런 기억들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위논문과 연구 근황.
학위논문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 3장도 이제 반 이상은 쓴 상태. 1-2장을 쓰면서 아주 많이 갈아엎어서 그런지, 3장을 쓰면서 이 부분 갈아엎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거나 지금까지 쓴 부분을 통째로 안 쓰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뭔가 마음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약간 귀찮지만, 그래도 할 수 있겠다는 것이 기본 마인드였다. 3장은 내가 이미 투고한 논문들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부분이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재료는 이미 있으니까… 여기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살리고 어느 부분의 서술을 바꿔야 할지를 결정하고 쓰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 않다!
이제는 슬슬 4장의 논변과 구조를 준비해야 한다. 논문은 내가 쓰는 것이고 내 주장의 설득력을 더해줄 배치나 사례 같은 것들도 내가 정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논문이 ‘자란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글이 중반부를 넘어가면 내가 닦아 놓은 길에 맞추어서 글의 흐름이 제한되고 내가 그 흐름을 잘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흐름을 다시 다듬어서 잘 읽히는 길로 닦아내는 사람은 나이지만, 그냥 어느 시점에서는 글이 ‘나의 모든 것이 투영된 생산물’이 아니라 내가 잘 관리해 주면 잘 자라날 수 있는 ‘식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왠지 글을 내가 잘 가꾸어 주어야 할 식물처럼 보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 건강에는 더 좋다고 생각한다. 글이 망하는 경우 손쉽게 환경 탓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것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특정한 요인만 통제한다고 해서 글이 더 좋아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글을 식물처럼 복잡한 유기체로 대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물론 어떤 구조적 차원에서 유비가 성립할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학위논문 외에도 환경 미학 공부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깔짝거리기도 했는데, 8월과 9월에는 감사하게도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을 공유할 자리가 있었다. 8월 말에는 YPC SPACE에서 환경미학과 관련된 강의를 했고, 9월 말에도 제주도에서 환경적 가치와 미적 가치의 조화에 관한 내 생각을 공유했다. 제주도 강의는 영어로 했기 때문에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의나 발표 등을 한지도 5년 정도 되었는데, 발표 방식에 관한 고민을 종종 한다.
나한테는 익숙한 발표 방식이 있다. 강의 자료에 밑줄을 치면서 말하는 것인데…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하면 발표 화면에 시선을 잡아둘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9월 강의에서는 포인터를 써서 거기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해 봤다. 포인터를 쓰면 컴퓨터 앞에 붙어있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고, 역시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는 게 낫겠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발표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말을 하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몸을 활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나한테 맞는 움직임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면서 유능한 강사 이미지를 애써서 얻고 싶지 않다.
또 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하면 뭔가 그 사람과 대화하는 장에 있다고 느껴서, 내가 할 말을 까먹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거나 할 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강의할 때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렵다.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은 모르겠다. 누군가는 강의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단점이겠지만, 누군가는 강의하는 사람이 관중과 상관없이 제 갈길을 열심히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바로 나..), 그 사람에게는 이게 단점이 아닐 것이다. 사실 강의하는 방법은 앞으로 시간을 거치면서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많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은 이런 고민을 남겨놓고 강의에서 얻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연구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물론 학위 논문 작성 때문에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환경 미학에서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미적 가치와 환경적/생태적 가치의 양립가능성’인데, 이 가치들 각각을 다루는 것 또한 큰 논의 주제라서 좀 힘든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생각은 이 둘이 교차하는 영역이 있고, 우리가 그 영역들을 더 많이 탐색해서 우리의 생활양식이나 예술 세계 속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주장하기 위해서 미적 가치나 환경적 가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략적인 생각은 있다. 하지만, 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미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에 관한 이론적 논의만을 통해서 밝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론적 논의 외에 사례에 대한 탐구들도 필요한데, 내가 사례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지는 않다 보니 이 작업이 어렵다.
이론적 논의에서 특정한 사례가 갖는 지위와 사례 중심의 연구에서 사례가 갖는 지위는 다르다. 그래서 이론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사례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다루고 기억하는 방식도 사례중심의 탐구를 하는 사람들과 다르다. 그런 차이점을 강의하면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엿볼 수 있는데, 그것도 또 재미있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런 차이들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더 유의미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 내가 더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9월에 논문자격제출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했다. 논자시도 쳤으니 이제 논문 열심히 써야 한다. 그전에도 열심히 안 쓴 것은 아니지만… 원래는 논문 계획을 세워놓아도 설렁설렁했다면, 이제는 뭔가 졸업을 위한 타임라인을 만들고, 원래 하던 일 외에 다른 일은 안 하면서 내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이 홈페이지도 작년 말부터 일기 외의 글은 뜸해졌는데, 사실 그때부터 프리(pre) 논문 모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글은 식물이니까,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균형 있게 제공해 줘야겠다는 마음이다. 글 쓰는 사람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 패턴, 글 쓰는 사람의 좁은 시야를 경계하는 마음으로 논문 모드에 돌입해야지. 논문으로 바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의 사이에서 올 가을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