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월 일기 : 일 년을 집어삼켜 버리는 연말.

비상계엄의 여파.

보통 일기를 쓰기 전에 그동안 나한테 있었던 굵직한 일들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번에는 지난 2-3달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고, 영화, 팟캐스트, 책 등 콘텐츠 로그를 확인해 보니 뭔가 하긴 했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의 일들만 생생하다. ‘지금, 현재’에 있는 힘껏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힘을 바짝 주는 이유는 12월 3일 비상계엄 때문이다. 그날 밤은 가슴이 철렁하고 무서웠던 밤이었다. 비상계엄 해제에 대한 안건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놓긴 했지만, 아직 계엄령이 해제된 것은 아니었기에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다음날 아침에 안 좋은 뉴스들이 속보로 떠 있으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언론을 규제하면, 진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몸이 피곤하니 금세 잠들었다.

새벽에 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계엄의 여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집회들이 이어지고 있고, 공수본의 조사를 통해서 내란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환율은 IMF시절의 환율에 맞먹을 정도로 올랐고, 그렇게 오른 환율이 우리나라의 각종 산업들과 가계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외국에서 수입해 왔던 것들을 꽤 긴 시간 동안은 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해야 할 텐데, 외국에서 자재를 수입해서 물건을 제조했던 작은 기업은 버틸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축산업은 주로 외국에서 수입한 사료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그런 상황에서 작은 농가가 환율과 함께 올라버린 사료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비건 지향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축산농가들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작은 축산농의 생계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축산업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비상계엄의 여파 속에서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국민이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에 책임을 지고 국민들의 삶을 정상화하는 데 힘을 쏟을 의무가 있는 이들은 지금껏 유지해 온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 비상계엄 문제를 야당과 여당 사이의 정치 싸움으로 만들려고 한다. 12월의 비상계엄이 우리나라를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빠트리는 국헌 문란이라는 사실이 명확한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 ‘상대방이 먼저 잘못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상대방도 만만찮게 비도덕적’이라고 항변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여론을 만들려는 시도는 비겁하고 치졸하다. (참고로 야당 지지하지 않음..)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피곤해서 요즘 소셜 미디어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소셜미디어에 피곤함을 느낀 지는 몇 달 되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에 덜 들어가니 스크린 타임이 줄어들고, 그 덕분에 12월에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전부 마감일 안에 잘 끝낼 수 있었다.

소셜 미디어를 들어가지 않으니 놓치는 것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일상, 자주 방문하던 공간의 행사나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 소식, 후원하는 시민 단체들이 공유하는 활동 소식, 새로운 책의 출간 소식 등. 주로 혼자서 작업하는 나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세상과의 연결감을 느낀다. 모든 소식을 확인하고 모든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사람들이 이런 가치를 지향하면서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상 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 모든 언론사들이 계엄과 관련된 뉴스를 연이어 내놓을 때, 내 눈에 들어왔던 뉴스들이 있었다. ‘장 담그기’가 23번째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뉴스, 환경에 관심 있는 시민을 중심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이뤄진 시민 과학 활동의 성과를 전하는 뉴스 등. 시국이 뒤숭숭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 잘 살려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 ‘시국이 이러니…’라는 말로, 정권 교체나 현 정권 심판과 무관해 보이는, 다른 가치를 말하는 운동과 실천들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운동과 실천의 모습이 나에게 전해질 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다.

인권 영화제와 농촌 쓰레기.

11월 말부터 12월까지는 강의와 평가, 마감 등으로 바쁘게 보냈고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는 학위 논문 작성을 하고 중간중간 시간이 조금 생길 때마다 어딘가 놀러 가면서 보냈다. 10월 중순 즈음에 하동의 지역 축제에 갔고, 같은 달의 말에 목포 인권영화제에 갔다. 지역 축제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인디뮤지션들의 공연을 봤고, 섬진강변을 산책했다. 인권 영화제에서는 영화 몇 편을 보고 영화제에 참석한 단체들의 부스를 구경했다. (손수건 같은 굿즈도 몇 개 구입했다.)

영화제 날은 10월 말인데도 날씨가 따뜻하고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스크린 앞에 앉아서 영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정수리가 너무 뜨거워서 뒤쪽의 나무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초반에 본 단편 영화 외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봤던 영화는 <바로 지금 여기>라는 영화였는데, 사실 드문드문 봐서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 어렵긴 하지만, 그럼에도 몇몇 장면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영화였다. 특히 여성 농민 김정열 님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가 무엇과 싸우고 무엇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누구와 연대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비건 지향을 하면서 마트에서 직접 과일이나 야채를 구입해서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농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는지 관심이 생겼다. 국내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 위주로 식생활을 꾸리는 것이 ‘도시의 소비자’에게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채소나 과일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방법으로 여겨질까. 사실 농업도 화석연료, 수입원료 기반으로 이뤄지고 많은 양의 비닐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목포 인권 영화제에서 구경했던 부스 중에는 《출세한 쓰레기》라는 제목의 전시도 있었는데, 농업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각종 쓰레기들을 재료로 삼아서 한 미술 작업이었다. 한진희 작가님은 비닐로 옷을 만들어 입고 시골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쓰레기들이 고여서 오염된 물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다. 작은 쓰레기를 스티로폼과 랩에 포장한 조형작업은 농촌의 쓰레기가 농촌의 문제만은 아니며, 그 쓰레기의 성분이 흙으로, 물로 스며 들어서 도시 생활자들의 밥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농촌쓰레기들로 만든 작품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만 농촌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을까?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재배를 하고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으면, 비료를 담은 비닐, 농약 통 등의 쓰레기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 도시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예쁘고 깔끔한 모양으로 과일과 야채가 자라지 못할 수 있고, 표준규격을 만족하는 과일과 야채를 많이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새로운 농법에 도전한 결과로 농산물을 많이 출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농민들에게는 생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도시 생활자들이 자연에서는 야채와 과일이 자신만의 고유한 형태로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야채, 과일 취향을 바꾸면 될 문제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이것도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농촌의 쓰레기는 농업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초래한 결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전시를 보면서 먹거리에 연관된 문제인 만큼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년 계획(?)

2024년에는 학위 논문 쓰는 것에 집중하고 외부 일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밖으로 나돌기도 했었다. 4월에는 《텍스트 뷔페》 전시에 참여했고, 5월에는 일상 미학 나누는 일일 행사를 했고, 8월에는 YPC SPACE에서 환경 미학 강의를 했다. 환경미학 주제로 읽은 문헌들이 꽤 쌓였으니 이 주제로 논문도 내볼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올해에는 진짜 학위 논문 작성을 마무리해야 한다. 학위 논문 초고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쉴 때도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예전에는 이 감정에 사로잡혀서 뭔가 하려다가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가 되어서 피곤함만 지속되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도 이런 감정에 좀 덜 휘둘리는 방향으로 태도가 많이 변했다. 아무튼 내년에는 꼭 졸업하고 싶다. 졸업을 하고 나면 수입을 만드는 방식이나 생활 패턴 등이 바뀔 것이고, 그런 변화 속에서 나의 루틴을 다시 만드는 것이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은 졸업 이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기대되기도 한다. 방학 동안 열심히 써야지… 혼자서만 결심하면 못쓸 수도 있으니, 일기에 박제해 놓는다.

사실 새해를 일본에서 맞이하려고 했다. 급하게 가기로 한 여행이어서 연말연시의 일본은 거의 모든 가게, 박물관, 미술관이 닫는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숙소 예약도 하고 문을 여는 식당 몇개를 찾으면서 여행 준비를 했다. 그리고 출발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다. 무안공항-나리타공항 왕복티켓을 예매했던 나는 숙소, 보험 등을 차례로 취소했고 짐가방을 그대로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일로 광주를 오가며 연결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했고, 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이 단단하지 않고 무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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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월 일기 : 바쁜 마음과 잘 살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