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월 일기 : 학기말, 환경 책 등.

학기말의 짧은 휴가.

6월부터 조금씩 바깥공기가 습해졌지만, 그래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통하면서 실내의 습기도 제거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7월이 되니 창문을 열면 이제는 외부의 습한 공기가 방 안으로 침범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한여름인 8월은 창문을 닫아놓아도 방에 습기가 찬다. 제습기로 빨래를 말려야 하는 계절, 요리하면서 생긴 열기를 에어컨으로 식혀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학기말인 6월은 항상 정신이 없다. 매주 피드백하거나 평가할 거리가 생기고, 그것들을 마감일자에 맞춰서 쳐내다 보면 한 주가 금세 지나간다. 지금은 내가 주 교수자로서 15주짜리 수업 하나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 그래도 조교로서의 평가나 피드백은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6월에는 굵직한 마감이 끝났을 때 짧게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종종 가졌다. 

6월 첫째 주에는 무주 산골영화제에 다녀왔고, 6월 둘째 주에는 DMZ 뮤직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무주에서 영화는 두 편 봤는데, 하나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찬란한 내일로>였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안전>이라는 무성영화였다. 연리목 음악감독이 꾸린 팀 Wow Y의 라이브연주와 함께 감상했다. <찬란한 내일로>는 좀 웃기고 귀여운 영화였는데, 감독이 영화를 하면서 느끼는 위기의식이나 불안을 여러 가지 상황들을 통해서 나타낸다. <마침내 안전>은 소리가 없는 흑백 영화이다. 스토리는 아주 단순했지만 장면을 만드는 방식,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방식이 요즘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음악도 배우의 연기 및 서사의 전개와 착 붙어 있는 느낌, 아무래도 큰 스크린으로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볼 때보다 훨씬 더 몰입하고 긴장하면서 봤던 것 같다. 식사는 근처의 식당에서 비빔밥과 부추전을 먹고, 숙박은 덕유산 야영장에서 캠핑했다. 작년에는 잠을 잘 못 자서 거의 날 밤샜는데, 이번에는 푹 잘 잤다. (아무래도 침낭이 있어서 잘 잔 듯...) 밤에는 대야영장에서 하는 야외 상영 영화를 보거나 뭔가를 더 먹지 않고…  장작과 간이 화로로 불멍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DMZ에서도 공연보다 누워있다 책 읽다가 외부 식당에 가서 밥 챙겨 먹고(두부정식!),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실 여행을 가서 하는 활동이나 집에서 쉴 때 하는 활동들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여행 가서 쉬는 것, 집에서 쉬는 것, 뭐가 다른지 생각해 봤는데, 욕구가 좀 없어진다는 게 차이 같다. 다른 지역으로 가면, 그곳이 숲의 한가운데든, 해변가든, 시골이든, 계곡이든, 소도시든 장소에 상관없이 ‘뭔가를 더 하고 싶다, 해야 한다, 사고 싶다’는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여행을 가면 쪼그라든 마음으로 누워있어도, 책만 읽어도, 가만히 앉아있어도, 동네를 걸어 다니고, 허기를 때울 정도로만 먹어도 괜찮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에는 덜 그랬음..) 쪼그라든 마음으로 편안한 시간을 경험한 것이 살던 곳으로 와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덜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상 깊게 읽은 환경 책

몇 개월 간 읽었던 책 중에 인상 깊었던 책은 니콜라이 슐츠의 나는 지구가 아프다 였다. 슐츠는 사회학 연구자로 브루노 라투르의 지도제자이다. 사실은 이 책보다는 슐츠가 라투르와 함께 쓴 녹색 계급의 출현이 더 많이 알려진 책 같은데, 슐츠나 라투르의 이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나는 지구가 아프다를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들의 저서의 배경이 된 문제의식이나 생각들을 조금 더 쉽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슐츠가 ‘자유’에 관해서 숙고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행위능력을 과도하게 행사한 결과가 지금과 같은 기후 상황을 초래했다면, 인간이 자유롭다는 점이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가? 자유라는 개념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슐츠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여전히 자유라는 개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대신에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자유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근간이며 사회적 질서는 자유의 이상을 바탕으로 합법화되어 왔다. 이것이 우리의 자기 인식 아니었나. 이 인식은 부정확할 수는 있겠으나 효과적이고 울림이 있다. (…) 지구의 상황 때문에 자유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걸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우리는 자유의 이념에 너무도 긴밀히 얽혀 있다. “환경보호냐 방임이냐”가 최후통첩이 될 수는 없다. 지구가 자유의 힘을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처럼 자유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없다는 건 틀림없지만 자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다. 자유의 통념적인 의미를 배반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자유의 이념에 충실한 신하로 남아야 한다. 자유를 찢어 없애기보다는 새로운 자유의 왕국을 세워야 한다.(62-63)

자유, 합리성, 행위자성 같은 개념들은 근대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근대의 인간중심적 사고관의 단초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유, 합리성, 행위자성을 논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인간이 지금까지 간과하고 무시했던 현상들에 주목하기 위해서 새로운 개념이나 구분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항상 그래야만 하는지, 이미 있던 개념을 우리가 다시 활용할 수는 없는지.. 이런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특히 미적 판단, 미적 경험, 미적 가치처럼 미학의 탐구 대상이 되는 개념들도 그러하다. 미학 또한 근대에 확립된 것이고, 사실 미적 경험을 통해서 미적 판단을 내리고 대상의 미적 가치를 인식하는 주체는 모두 인간이다. 그렇지만 미적 경험, 판단, 가치를 통해서 미적인 삶을 누리는 전형적인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이 지금까지 미적인 삶을 추구한 것이 ‘과도한 소비’와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로 이어졌다고 해도, 미적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슐츠의 태도에서 나도 미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었다. 슐츠는 자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자유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또한 사회가 원하는 바른생활을 영위함으로써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뭔가와의 거리두기, 또는 내면 깊은 곳에 침잠하기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도덕적 관계 속에서 자유를 찾는 일, 의존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상부상조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걸 깨닫는 것. 시공간의 ‘바깥’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와 역사 안에서, 무관심이 아니라 오직 ‘개입’(engagement)을 통해서만, 순수함 대신 기본적인 관계 속에서 자유는 찾아진다. (68)

나는 이들과 사상적 배경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녹색 계급의 출현, 나는 지구가 아프다를 읽으면서 내가 모든 꼭지의 내용들을 다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슐츠가 제안한 ‘다른 개체들에 대한 의존과 연결에 기반한 자유’ 또한 그 내용을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 내용은 슐츠가 공부한 이론들과 그의 여러 가지 경험들을 매개로 직조되어 있다. 나 또한 나에게 이용가능한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그리고 부족한 공부는 채우면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만들어가면 된다. 그런 시도를 해볼 힘을 슐츠의 책에서 얻었다.

여름의 음식과 운동.

한여름에는 보통 걸어 다녔던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닌다. 봄, 가을, 겨울에 비해서 낮에 졸리고 피곤할 때도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는 커피로 졸음을 참기보다는.. 그냥 잠깐 자거나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한다. 여름에는 커피 빨도 안 먹는다. 카페인은 잠깐 정신만 들게 할 수 있지 열기로 노곤하고 피곤해진 몸을 깨워줄 수 없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계속 누워있을 수 없으니 운동을 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 하루동안 내가 시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썼는지 계산하고, 생산성을 체크하기보다는 하루치의 움직임과 밥을 챙기는 것에 집중한다. 

여름에는 더워서 주로 파랑 버섯고명만 간단하게 올린 비빔국수나 열무 혹은 상추를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어 비빈 비빔밥, 연두부 덮밥처럼 간단하게 조리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해 먹는다. 여름은 뭔가 뜨거운 국물이나 소스를 먹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여름에 달아난 입맛을 위해서 고민 끝에 믹서기를 집에 들였다. 목표는 페스토 만들어먹기.  나물이 생길 때마다 항상 파스타에만 넣어먹었는데, 이걸 페스토로 만들면 더 파스타를 풍미가 좋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참나물 페스토를 도전했는데 망했다. 망한 이유는 믹서기가 너무 작고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력하지 않은 믹서기로 요리하려면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갈기보다 단단한 것을 먼저 갈고 야채도 충분히 작게 잘라서 넣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대강 잘라서 다 때려 넣은 것이 실수였다. 덜 갈린 나물 줄기와 잣 건더기가 좀 많았지만.. 그래도.. 맛은 좋게 먹었다. 믹서기 사용이 손에 익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수영은 천천히 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물밖에서 스타트하는 법을 배웠는데, 제대로 된 모습으로 다이빙을 하려면 발가락을 끄트머리에 걸고 물을 향해 쓰러지는 느낌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뛰어드는 게 잘 안된다. 수영은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 운동이지만, 사실 수영이 잘 되고 안되고는 몸의 느낌으로도 대강 감지를 할 수 있다.  점프를 가볍게 잘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아직 물에 힘껏 뛰어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공포가 좀 무의식? 적인 거여서 그냥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 스타트하면서 무의식 교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모든 영법이 다 어렵다고 느낀다. 어떻게든 영법들을 다 할 수 있게 되니까, 이제 세세하게 잘 안 되는 부분들이 눈에 밟힌다. 배영은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다. 자유형도 느리긴 한데 그래도 장거리로 가면 좀 낫다. 느린 속도를 유지하면, 힘들지만 네다섯 바퀴(25미터 기준)는 할 수 있다. 평영은 다리 접는 타이밍이랑 손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게 어렵고, 다리 접을 때에도 몸 쪽으로 끌어 당기 듯 접는 게 잘 안된다. 접영도 이제 25미터는 가긴 하는데, 얘도 평영처럼 타이밍이 문제다. 출수킥 타이밍이 살짝 빠르다. 그래서 물 잡기를 할 때 출수 다리 동작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매 동작 의식하면서 수영하다 보면 속도가 안 난다. (그렇지만 타이밍 안 맞는 접영해도 속도 안 나고 힘도 빨리 빠짐 ㅠㅠ)  그렇지만 내가 몸치라는 점을 다시 되새기면.. 이만큼 한 것도 대단하다. 예전에도 안되던 동작에 가끔 성공할 때의 느낌이 좋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치고 싶었던 동작이 가끔씩 잘 될 때의 몸의 느낌이 좋다. 

뒷북일기의 변명.

항상 뒷북일기이긴 하지만, 이번 일기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쓴 일기가 없었다. 사실은 쓰는 것 자체가 오래 걸렸다기보다는, 예전에 써놓은 글을 마무리를 지어줄 마음이 통 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위에 쓴 내용은 (요리 얘기 빼고) 대체로 6월 말과 7월 초의 생각 모음집에 가깝다. 그럼 7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달력을 체크해보고, 사진첩을 뒤적여보니 뭔가 읽고 보면서 다니긴 했는데, 그 경험을 정리할 기운은 없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여름이라서 그런가 보다” 핑계를 대본다. 그렇게 여름에 더욱 스스로한테 너그러워진다. 

7월에는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손에는 핸드폰보다 얼음물 담은 텀블러가 더 자주 들려있다. 친구랑 난지천공원을 지나서 월드컵공원으로 오는 길을 산책했는데, 이 공원도 예전에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을 공원으로 바꾼 곳이고, 그래서 곳곳에 매립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수도권 매립지도 곧 매립이 완료된다던데, 그 다음에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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