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1-2월 일기 : 연구실 출근과 운동 근황.

연구실 출근 시작.

제목은 1-2월 일기지만, 준비중인 것들(4월과 5월에 공지예정.)이 좀 있고…뭘 정리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일기가 늦었다. 아마 3월의 이야기도 약간 포함한 글이 될 것 같다.

2022년 3월부터 해왔던 글쓰기 튜터일을 마무리했다. 논문에 조금 더 집중하려면 뭉텅이 시간이 필요한데, 튜터로 일하면 일과 시간에 중간중간 메일 답장, 글쓰기 상담, 업무 관련 이야기 등… 을 해야 해서, 뭉텅이 시간을 만들기가 어렵다. 물론 그 일을 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틈새 작업을 해서 논문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발표문이나 투고용 논문 같이 분량이 비교적 짧은 글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만들겠는데, 학위 논문처럼 분량이 긴 글은 잘 안된다. 근무하는 기간 동안, 학위논문의 구성이나 내용 작성 진도는 실제로 방학 중에 많이 나갔던 것 같다. 물론 학기 중에 자꾸 논문 외에 다른 일(투고나 발표 등..)이 생겨서 논문을 많이 못썼던 것도 맞지만, 아무튼 논문을 쓰려면 일을 하나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긴 했다.

일을 하나 그만두면서 벌이가 약간 줄었지만, 그래도 강의나 수업 조교는 하고 있고 연구재단 사업도 하나 있어서 일단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ㅋㅋ그런데 강의, 조교, 연구재단 사업 이 모든 것을 다 해야만 약간 여유 있게 유지되는 게 함정.. 대출이자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는데 내 인건비는 너무 조금씩 오른다..) 가능하면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 졸업도 하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기도 하니까. ‘내가 세운 계획을 지켰는지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만큼의 읽기, 생각하기, 쓰기를 하자, 그리고 내일의 읽기, 생각하기, 쓰기를 위해서 나를 잘 먹이고 잘 쉬게 해 주자’ 그렇게 생각해야지.

3월부터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공동 연구실을 나가고 있다. 연구실에 가니 자주 보던 사람들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어서 첫 번째 한 주는 책상을 세팅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독서대, 노트북 거치대, 마우스, 키보드, 멀티탭.. 이것저것 갖고 오니까 비어있던 책상이 가득 찼다. 연구실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논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더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 든다.

고요하게 자기의 일에 몰두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연구실이 독서실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탯 관리’나 ‘수험을 위한 공부’가 주가 되는 공간인 독서실과 달리, 연구실은 그런 것과 거의 관련 없는 공부가 주로 이뤄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학위 자체가 ‘스탯’이라고 볼 수도 있겠찌만, 인문학 학위는 투입한 것에 비해서 보장되는 것이 많지 않아서 별로 인기가 없는 스탯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이 좁은 풀 안에서 논문 출간 개수나 학벌이나 경력으로 서로 경쟁하고 줄 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ㅠㅠ 어떤 학교에서 공부하든 인문학 공부의 본질은, 탐색하고 읽고 연결 짓고 쓰는 기술을 익히는 것에 있고, 이 기술은 정말 소중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회는 내가 배운 기술에 그렇게 높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 (당장 내가 일을 3개 이상 해야 좀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것만 봐도..)

물론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배운 것이 가치 없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쌓은 스탯이 비인기 스탯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은 약간은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비인기 스탯을 쌓기 위해서 꿋꿋하게 연구실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묘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운동 근황

수영은 이제 배운 지 1년 반이 되었고, 접영 배운 지 4개월 정도 되었다. 입수킥을 못해서 한두 달 정도 쩔쩔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양팔 접영을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양팔 접영은 잘하지 못한다. 평영이나 자유형 같은 다른 영법도 교정이 필요하긴 해서 오리발 단계로 가지 않고 다른 영법들도 교정받고 배우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금이 편안하다. 양팔 접영은 팔 힘이 있어야 하고,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때 등과 배의 힘을 잘 써야 한다. 그런데 내 몸에서 제일 약한 부분이 팔이고, 나는 몸치라서 몸을 움직이면서 적절한 부분에 동시다발적으로 힘주는 것을 잘 못한다. 자유형이나 평영은 자세가 약간 무너져도 대충 커버할 수 있는데, 접영은 하나가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지상에서 양팔 접영 팔동작도 몇 번씩 해보고 (완전 햄스트링이랑 상체 운동임..) 팔 굽혀 펴기도 조금씩 하고 있다.

강습받을 때는 다른 영법들도 골고루 연습하고 교정을 받는다. 접영만 집중적으로 연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영법만 집중적으로 연습했던 시기만큼 하루하루 나아진다는 감각이 덜하기도 하다. 요새는 물을 잡는 감각, 팔을 쭈욱 뻗고 물속으로 몸을 밀어내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접영처럼 순간적인 힘이 필요한 영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물 안에서 몸을 쭉 펴서 밀어내는 힘이 있어야지 대부분의 영법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접영과 평영에서는 발차기를 하면서 물속으로 입수를 할 때, 자유형과 배영에서는 한쪽 팔을 돌리면서 다른 쪽 팔을 앞으로 뻗을 때.. 팔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도 늘리면서 뻗어내는 그런 힘이 필요하다. 하다 보면 마음이 급해져서 이런 느낌에 신경 쓰지 않고 동작을 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내가 물속으로 몸을 꽤 잘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이때의 느낌이 좋아서 수영을 한다.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저렴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요새는 기구 필라테스도 배우고 있다. 처음에 할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니까 몸을 비틀고 힘을 짜내고 균형을 맞추면서 버티는 동작에 적응이 좀 되었다. 무엇보다도 운동을 마치고 나면 몸이 너무 개운하다. 나는 종아리나 발목 부분이 항상 피곤하고 뻐근한데, 필라테스 동작에는 다리를 쭉 펴고 발을 플렉스나 포인으로 만들어서 발목 주변의 근육을 늘려주는 동작이 많아서 그런지 수업을 마치고 나면 종아리와 발목의 뻐근함이 싹 가신 상태이다.

코로나 유행으로 지난 몇 년 간은 집에서 이것저것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수영과 기구 필라테스를 다니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특정한 장소에 가서 배우면서 운동하는 것이 더 개운하고 기분 좋다는 것이다. 운동을 오며 가며 마주하는 아침과 저녁의 차갑고 상쾌한 공기, 운동을 마치고 개운한 상태에서 센터를 나서는 느낌, 운동을 통한 생활반경의 확장 등은 집에서 운동할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제는 운동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운동을 오고 가는 시간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감각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여러 가지 운동들을 천천히 배우며 움직임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하루는 전북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에 다녀왔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고인돌이 말 그대로 들판에 널려있는데, 걸어서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구경할 수 있다. 유적지 규모가 커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 같은 열차로 유적지를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고,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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