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일기 : 수료 첫 학기의 방학.
새해의 다짐
한 해의 뒷자리 숫자가 또 바뀌었다. 나는 노트에 메모를 하거나 일기를 쓸 때 날짜도 함께 적는데, 해가 바뀌고 나서 한달 정도는 그 전년도의 날짜를 쓰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예를 들면, 2022년 1월 2일이라고 써야하는데, 자꾸만 2021년 1월 2일이라고 쓰는 것이다. 작년의 날짜를 쓰다가 이내 날짜를 잘못 썼다는 것을 깨닫고, 2021년 1월 xx일이라는 1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환경이나 상황은 변하긴 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하루하루를 보내는 방식에는 별로 변함은 없는 것같다. 특히 매 끼니를 잘 챙겨먹는게 중요하다는 점이.
이사오고 나서 큰 냉장고가 생기고, 부엌도 집 안에 있으니, 해먹는 삶이 상당히 편해졌다. 집 근처에 마트와 시장이 있어서 장보기가 좋다. 예전에는 장 볼 때 마다 버스를 타고 나가야했고, 부엌도 공용 부엌을 써야했기 때문에, 식사 준비의 귀찮음이 몇 배로 컸다. 그렇다고 현재에도 식사 준비가 전혀 귀찮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만 나를 다독여주면 금방 귀찮음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귀찮음이 줄어들었다. 시장에서는 주로 야채나 과일을 사고, 마트에서는, 묶음으로 파는 제품들을 산다. 나는 한꺼번에 뭔가 많이 사기 보다는, 필요한 만큼 조금씩 사놓고 모자라면 또 장을 보러 가는 편이라 일주일에 2-3번은 시장에 가는 것 같다. 시장에 갈때마다, 야채랑 과일 값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쯤 이 품목의 가격이 내려갈지 눈치를 보다가, 결국 그 중에서도 싼 품목을 집어든다.(올 겨울은 딸기가 귀하다.) 올해도 끼니를 직접 차려먹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길, 앞으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의 가짓수가 조금 늘어나고 손도 좀 빨라지기를 바라보았다.
새해에 읽은 책.
학기말 방학을 맞이해서, 몇권의 책을 펼쳤는데, 그 중 하나가 『연구자의 탄생』이다.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연구 생활이나 연구 주제에 관해서 쓴 에세이들의 모음집이었는데, 연구 주제/생활에 관한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 저자마다 제각각이어서 재미있었다. 대학원에서 어떻게 연구와 생계를 동시에 유지하면서 살아왔는지, 어떻게 대학원에 들어와서 이 주제로 연구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글도 있는 반면, 특정한 연구 주제에 관한 소개로 손색이 없는 글도 있었고, 현 시대에 대한 진단을 연구 맥락으로 제시하고, 앞으로 중점적으로 탐구하고싶은 질문들을 구체화하는 글도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질문을 다듬고 구체화하는 글보다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현재의 연구 주제를 마주하게 된 이야기, 연구 생활과 생계를 병행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읽었고, 대체로 책의 앞부분의 글들이 그런 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글들도 흥미로웠다. 내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식견이 생기는 느낌.
물론 좀 공적인 자리에서 “왜 이 주제로 연구하게 되셨어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나도 여기에 도달하게 된 개인적 여정을 읊기보다는,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 혹은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어떤식으로 이뤄지는지 알고싶은 사람들이 궁금해할만한 식으로 답을 할 것이다. 한 질문에서 어떻게 다른 질문들이 뒤따르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변들이 구체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고의 흐름을 답으로 제시할 것 같다.
하지만, 연구 주제와 관련된 진지한 답변을 기획하는 것만큼, 내가 연구자,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 것이 내 삶의 어떤 개인적 사건들에서 연유한 것인지, 그러한 사건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이고, 내가 그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 얼마나 나의 계획이나 의지과 상관없는 만남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전공을 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글(“분석미학과 나”)을 한 편 쓰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것과는 다른 스타일과 톤으로 전공과 연구 주제에 관한 생각, 연구하는 삶의 경험을 풀어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학을 맞이해서 또 읽었던 책은 『마이너 필링스』인데,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소수자로서의 감정들을 다루는 책이다. 이 감정들은 분명한 이름도 없고, 대상과 경과, 배경을 특정하기 어려운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서 이를 유형화하고 그 구성 요소를 분석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들을 ‘마이너 필링스’로 호명은 하지만, 그 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들을 끓고 있는지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에 관한 생각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은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저자는 미국 사회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갖는 근면함을 내세워서 능력주의를 공고하게 해왔다는 점, 미국 사회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능력에 맞는 지위와 대우를 제공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근면함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머물게 했다는 점, 미국 사회가 소수 인종을 신경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시아인들을 활용했다는 점을 그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이런 부분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진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근면함을 증명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결국에는 아시아인의 근면함에 대한 이미지가 아시아인들이 미국사회에서 그나마 잘 자리잡게 하는데 기여한 것은 아닌지, 나도 그 덕을 본 것이라면 내가 분노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외에도 저자가 대학생일 때 함께 예술을 공부했던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과의 경험을 다룬 챕터도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선망하고 질투하고 그 와중에 관계가 잠시 서먹해졌다가 갑자기 또 관계가 다시 이어지기도 하는 그런 에피소드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학교에서의 그러한 관계들이 현재 자신이 가진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회고하면서 쓴 챕터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에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나 메모들은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경험의 의미가 정리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공개적인 글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에게도 이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그런 나에게 이 책의 글쓰기 스타일이나 톤을 구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조금더 가까워지고 싶은 그러한 스타일의 글이었다.
학위 논문 쓰기(에 관한 생각)
수료 했으니 이제 학위 논문 준비도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재학 중에 틈틈이 만들어놓았던 논문 목차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너무 구렸다. 실제로 구린 건지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여튼 많이 고쳐야 한다. 일단은 수정에 앞서서, 읽었던 논문들을 다시보거나 아직 읽지 못했던 논문들을 읽으면서, 내가 이 연구 주제를 어떤 식으로 소개할 것인지, 그리고 이 주제와 관련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지점들, 불렛 포인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있다.
사실, 학위 논문 주제와 관련해서 학술지 논문들을 두어개 쓰긴 했지만, 학위 논문은 그 논문들을 모아서 여긴 1장, 여긴 2장 이런 식으로 배치해서 엮기만 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학술지 논문들도 이 주제에 대해서 알아가고 내 생각을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학술지 논문의 주장은 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 구체화되고 바뀔 수도 있다. 지금까지 출판해왔던 학술지 논문들을 활용할 것인지, 만약에 활용한다면 목차의 어떤 부분에 배치할 것이고, 그 내용들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 논문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했다고 해도, 결국 실제 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에 관한 생각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학위 논문 목차에 맞게 학술지 논문 내용들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학술적으로 이것저것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긴 한데, 실제로 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나를 다그치고 얼러서 하게 만들어야 한다. 작년에는 같은 연구 주제로 세 명의 연구자가 모여서 기획 논문을 출간하는 일에 참여했었고, 그 때는 그 프로그램의 출간을 위해서 맞춰야 하는 데드라인 같은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그런 데드라인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된다. 작년에 공동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좋았던 것도 사실 그러한 공동의 데드라인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사실 공동 연구라고 해도, 인문학에서는 대부분 단독 저자로 논문을 쓰기 때문에, 연구 주제에 관한 질문과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은 각자의 일이다. 아마 공동 저자로 논문을 쓴다면, 전체적인 논문의 방향성과 논문의 강조 지점들에 대해서 협의를 하고, 목차를 함께 구성하고, 각 내용을 누가 어떤 식으로 채울지를 나누고, 각자가 써온 초고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마지막에 완성본을 함께 읽으면서 전체적인 문체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나는 공동 저자 논문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이런 과정을 경험해본적은 없지만, 일단 내가 구상한 프로세스는 이렇다. 하지만 단독 저자로 논문을 쓴다면, 저 일을 내가 혼자 해야 한다. 그래서 공동 연구에 참여했지만, 사실상 단독 연구..?프로그램이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의 좋았던 점은, 중간에 서로 해왔던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일종의 데드라인 역할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마구 펼쳐놓은 생각들을 분명한 언어로 정리를 해야 하니까, 내 논변을 조금더 분명한 구조 속에서 보는 것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연구자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엿볼 수가 있어서, 이 주제를 나만 머리 싸매고 고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아무튼, 지금은 공동 연구도 끝났고, 참여하고 있던 글쓰기 모임도 비정기적 모임으로 바뀌어서,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데드라인이 모두 사라졌다. 그 틈을 타서 이것저것 학교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보긴 했지만, 일하면서 논문을 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학위 논문이나 학술지 글을 포함한 각종 논픽션 글들을 쓰는 주변의 연구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힘을 내서 내일 첫 출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