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의 일들 : 일과 휴가.

여름의 일들.

이번 여름에는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다. 학기보다 방학 중에 상담이 없고 덜 바쁠 것 같아서 방학 동안 해야겠다고 계획해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만 해도 시간이 다 간 느낌이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분석미학 강의'이다. 학교 밖에서의 분석미학 강의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분석미학과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번역 텍스트의 수도 적고, 분석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수도 적고, 또 분석 미학 분야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학자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분석미학은 미학의 분과 학문 중에서도 가장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술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각자가 지닌 관점과 문제의식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찾아가는 방식이 흥미로운 그러한 학문이다. 분석미학의 이러한 논의를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미학에 이런 논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강의안은 학기 중에 다 만들어놓았는데도, 중간에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자꾸 생겨서 수정하느라고 일이 늘어났다. (중간에 강의안 파일도 한번 날린 적 있다 ..ㅠㅠ) 다음에는 나를 위해서도.. 수강생을 위해서도.. 짧은 주차로 강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대학원생 인권 논문상에 논문을 제출한 것이다. 작년 2학기 때 윤리학 수업 들으면서 쓴 페이퍼를 제출했다. 그 수업을 재미있게 들었고, 페이퍼도 열심히 썼는데 이대로 내 컴퓨터에 묻어놓기는 아까워서 어디든지 한번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작년 수업에서 이 페이퍼에 대해서 받은 피드백을 모르고 지워버린 것..! 연초에 메일함을 싹 비웠는데, 피드백 파일을 미리보기로만 확인하고, 따로 저장을 해놓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 막상 수정하려고 하니까 참고할만한 피드백이 없어서 약간 허망했다. 그래도 수정은 혼자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어떻게든 수정해서 내긴 했다. 논문의 주요 질문은, “여성이 갖는 임신 중단의 권리가 그가 부모의 책임을 갖는다는 점에 의해서 약해지는지”, “부모의 책임이란 언제 부여되는 것인지”,  “여성이 갖는 임신 중단의 권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보장되어야 하는지"이다. 이 중에서 ‘부모의 책임'이란 주제는 너무 큰 주제이기도 해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었다. 

이 페이퍼를 처음에 구상하고 썼던 작년에는 미국에서 임신 중단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었는데, 논문을 수정하는 동안 상황이 바뀌어버려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진 것은 너무 정치적인 결정이다. 재생산권에 대한 꼼꼼한 논의를 바탕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냥 로 대 웨이드의 논리를 뒤집기 위해서 미국 헌법을 아주 보수적으로 해석한 의견에 많은 대법관들이 동의를 했다. 이러한 결정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다니…   논문을 수정하면서 위험한 경로로 임신 중단 약물을 구하는 여성들, 그리고 임신 중단을 위해서 주의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삶을 조금 더 생각했다. 

두 번의 휴가.

이번 여름 동안에는 휴가를 두 번 다녀왔다. 한 번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다녀왔고, 한 번은 친구들과 부산에 다녀왔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작년에는 비대면 행사로 해서 유튜브 생중계를 봤던 것 같은데, 올해 이렇게 대면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6월에 갔던 파크 뮤직 페스티벌보다 사람 곱절로 많았다. 줄이 너무 길어서 거의 그 안에서 뭘 사 먹을 수가 없는 지경…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도 6월의 파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봤던 트래쉬 버스터즈가 있었는데,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김치말이 국수 부스 같은 곳에서는 다회용기 안 쓰고 그냥 일회용기 쓰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맥주도 텀블러에 담아주지 않았다. 이유가 뭐죠..?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꽝! 인 페스티벌이었다. 

그래도 좋은 음악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돗자리 펴놓고 야외에서 책 읽는 게 좋았다. 여름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많이 탔고 더위 먹을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날이 좋을 때 햇살을 온전히 받으면서 쉬는 것도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 햇살 아래에서 읽었던 책은 『다섯 번째 계절』(N.K.제미신)이랑 『므레모사』(김초엽)이다. 둘 다 밝은 분위기의 서사는 아니었지만, 록 페스티벌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읽으니 책이 불러일으킨 감정을 곱씹지 않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산 여행 갔을 때에도 해변가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옛날에는 해수욕장 가면 선베드랑 파라솔을 사설업체가 대여했던 것 같은데, 요즘 부산에서는 이제 파라솔과 선베드 대여 사업을 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상태가 괜찮은 물품들을 대여할 수 있었고, 그래서 또 해변가에서 편하게 책을 읽다 왔다. 이때 읽은 책은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이다. 저주 도구와 귀신, 신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은빛 털의 거대한 새 등의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힘을 얻는 세상이 매력적이었다. 책읽기도 좋지만, 그냥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서 부서지는 것을 들으면서 선베드에 누워있다가만 와도 참 좋다. 그렇게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 보면 지구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된다. 

부산에서 묵었던 숙소에는 수영장이 있었는데, 이번에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처음 가봤다. (아니면  수영장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나는 물에 못 뜨는 몸이라서 수영장 안에서 첨벙거리면서 걸어 다니기만 했는데,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물속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그때의 내 몸이 나한테 어떻게 경험될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친구가 나를 물에 띄워보려고 애를 썼지만, 내 몸은 긴장이 바짝 들어간 돌덩이 같은 상태였다… 물에서 몸에 힘을 빼고 늘어지는 게 너무 어렵다고 느낌…. 내년에는 꼭 수영을 배워서 물에 뜰 수 있는 상태로 바다든 어디든 몸을 한 번 띄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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