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의 일들: 학기말, 페스티벌.

연구하는 삶에 관한 단상.

5-6월은 바쁘게 보냈다. 예상대로 학기말이 다가오니 상담예약이 많아지기도 했고, 글쓰기 튜터 외에 하는 다른 학교 일도 중간중간에 생겨서 그 일들도 제 시간 안에 끝나게끔 준비하고 체크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그렇게 되면 내 연구나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다른 일 하느라고 내 연구 시간을 확보 못하는 게 안타깝고 슬프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 생각이 없다. ‘다른 일을 안할 수 도 없고, 바쁘면 내 연구 못하는 기간도 있는 거지 뭐~’이렇게 생각한다. 이제는 연구자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오직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행정이나 교육 등의 일에 종사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일은 거의 단행본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며, 그러한 분량의 글을 쓰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연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pdf메모 및 읽기 도구, 마인드맵 툴이나 연구 노트 등)를 활용하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 어떻게 정신 건강 관리를 할지, 논문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팁'들을 적용하 것도 논문 쓰기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결국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은, 내가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는지에 달려있다. 즉, 선행연구 분석을 하고, 논지를 세우고, 글을 쓰고 검토하는 데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강의나 행정 일들, 혹은 그 외에도 생활 유지를 위해서 하는 일들(청소나 식사)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혹은 아웃 소싱을 해서, 내가 연구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일들이 내 연구를 방해한다고 간주하고 아웃소싱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는 모르겠다. 아웃소싱의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나에게 생활 편의를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플랫폼 노동자를, 내 강의나 행정을 보조해주는 (혹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그러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위논문 작성 외의 다른 일들을 잘 굴러가게 하고 마무리를 지으면 단기적인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데, 나는 이 효능감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학위 논문 작성은 쌓은 것을 무너뜨리고 고치고 다시 세우는 것이 반복되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에, 한 챕터를 잘 마무리했다고 해도 내가 해냈다는 효능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걸 또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질문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한다. 물론 내가 학위논문 작성 중에 발생하는 불안이나 동요에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논문 수정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다면, 불안이나 동요를 밀어놓고 질문에 대한 가능한 대답도 빠르게 착착 생각해놓는 사람이라면, 내가 세운 것을 수없이 무너뜨리는 과정이 펼쳐져있다는 사실에 별로 겁먹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성격을 갖는 것은, 잘 먹고 잘 자는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는 것에 크게 의존하는 것 같다. 오늘 연구가 잘 안되더라도, 다른 일과는 잘 끝냈으므로 내 하루는 그만큼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하고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어제 마주했던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을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연구 외의 일과도 연구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서 해내는 것이 연구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연구만 하다 보면 내가 이 시간 동안 이만큼 연구해냈고, 내가 지금까지 해낸 성과들이 양적으로 이만큼이나 많고… 이런 것에 몰두한다는 측면에서 자의식 과잉이 되기도 쉬운데.. 연구 외의 다른 것에도 관심을 두는 것은 이런 자의식 과잉도 방지해줌…)

연구하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위해서 다른 일들을 전혀 하지 않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일이 많아지는 시즌에는 연구 시간이 많이 파편화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많은 일을 하고 퇴근한 날, 흩어져 가는 집중력을 붙잡고 읽는 논문, 연구에 시간을 많이 쏟지 못하는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낄 때 대중교통 안에서 살펴보는 논문, 틈틈이 남기는 논문 관련 메모들. 그런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읽고 기록한 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일관성 있는 연구로 엮어낼 수 있을지, 그걸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가 나의 요즘 관심사이다.

파크 뮤직 페스티벌: 트래쉬 버스터즈와 모트

6월에는 파크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야외 공연을 보러 갔다. 2020년부터 계속해서 미뤄져 왔는데 올해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되어서 드디어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야외공연보다는 실내공연을 선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이 있고, 돈도 있고, 타임테이블에 내가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야외 공연도 흔쾌히 가는 편이기는 하다. 물론 그동안 이 모든 조건들이 만족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페스티벌에서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트래쉬 버스터즈’라는 회사와 함께 했다는 점이었다. 이 회사는 닷페이스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때뿐만 아니라, 회사나 관공서 등 행사에서 먹는 도시락이나 페스티벌 음식 부스 등에서 일회용 음식 용기를 사용하는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회사인데, 주로 페스티벌이나 행사 등을 중심으로 음식을 담아먹을 수 있는 다회용기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것 같다.

처음에 저 인터뷰 영상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야외 공연, 특히 푸드 앤 비버러지(Food & Beverage) 존이 있는 페스티벌에서는 정말 엄청난 양의 일회용 쓰레기가 나오는데, 이런 회사랑 같이 협업해서 쓰레기 양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겠다..!’ 그런데 1-2년이 지나서 실제로 이렇게 협업을 하는 광경을 보니 신기했고, 이런 식으로 문화가 조금씩 바뀌는구나 싶었다. 나는 내가 먹을 음료를 담을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따로 챙겨가서 트래쉬버스터즈의 용기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얼핏 보니 다 먹은 그릇을 트래쉬버스터즈 부스에 반납하면 그 그릇을 씻고 소독해서 다시 음식이나 음료 부스들로 갖다 주는 그런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 같다. 트래쉬버스터즈 부스 옆에는 페트병 비닐을 벗겨서 투명페트병 모으는 통도 따로 있었는데, 그렇게 분리수거를 하도록 안내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대체로 잘 따르는 것 같았다. 이 회사가 앞으로 여러 페스티벌에서도 협업을 할 기회를 얻어서 용기 재사용 문화가 디폴트처럼 간주되는 시대가 오길 작게 바라본다.

책과 돗자리 의문의 색깔맞춤.

나는 페스티벌의 양일 다 참석한 것은 아니어서 라인업에 있는 모든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본 날에 무대에 섰던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라이브 공연을 본 적없는 아티스트들이어서 공연을 흥미롭게 봤다. 그중 모트(Motte)라는 아티스트는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너무 멘트를 잘했다. (노래도 굿!) 내용을 보면 연습해온 게 분명한데 너무 자연스럽게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이 공연을 통해서 자신의 노래를 새로 듣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아티스트로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노래에 대한 정보도 전달하는 멘트들(‘우리 이제 서로 알아가요!’)을 준비해와서 인상 깊었다. 예전에는 밴드의 프런트 퍼슨(front person)이 말을 잘 하건 못 하건 그건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려고 하는지를 유심히 본다. 서툴더라도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말을 걸고 나의 음악을 설명해주는 아티스트들, 내 음악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들(다른 밴드 멤버들 소개도 그렇고..)을 짚어주는 그런 프런트 퍼슨을 지닌 밴드들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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