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월의 일들 : 수영, 글쓰기 모임.

슬픔을 다루는 법

지난 두 달 동안은 너무 많은 죽음들과 약간의 개인사가 겹쳐서 쳐지고 기운이 없는 나날들이 많았다. 그럴수록 더 하루하루의 필요한 일들을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들을 일상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밥을 해 먹고, 식재료를 사러 가고, 청소를 하고, 방의 전등을 갈고, 폐형광등도 주민센터 수거함에 잘 넣어주고, 운동을 빼먹지 않고, 내 웃음 버튼 영상 보기 등등… 생활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일들, 몸을 움직이면서 뭔가를 해소하는 활동들, 머리에 힘을 빼주는 일을 하는데 집중했다. 물론 여전히 미루고 있는 일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한 상태를 뭔가 모자란 상태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사실은 기운 없고 쳐진 상태가 오래가지 않으려면 언론보도를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긴 한데, 일상적인 활동들을 해서 감정이 환기가 되고 나면 또 언론사 홈페이지에 SNS에 들어가듯이 접속한다. 이 마음은 또 무슨 마음일지 잘 모르겠다. 새로이 올라오는 소식들에는 계속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겠다는 마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라는 마음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나대로 이 시간들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방식대로 감정을 풀어내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했어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감정에 너무 사로잡히지 않은 채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영 배우기와 게임.

가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물속에서 숨을 내쉬는 법, 엎드려서 뜨는 법, 누워서 뜨는 법, 엎드려서 발차기(with 킥판), 누워서 발차기(with 킥판) 등을 배웠다. 엎드려서 발차기는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발차기 동작을 잘못해서 앞으로 안 나가는 문제도 있었고 몸에 힘을 못 빼고 자꾸만 기울어져서 통제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된다. 이제 몸에 힘을 빼는 요령이 생겨서 킥판을 잡은 손과 팔에 힘을 덜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잘하는 걸까 의문도 들었는데, 몸에 힘을 빼는 것도 다리를 올바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의식하면서 계속 반복하니까 되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렇지만 아직 25미터도 못나아간다… 오래 수영하다 보면 힘이 빠져서 앞에서 겪었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한다. 중간중간 충분히 쉬어주고 수영하면서 숨을 자주 쉬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산소가 부족하면 몸에 힘이 빨리 빠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의식하면서 하다 보면 나아지겠거니.’ 생각하면 또 다음 강습 시간이 기다려진다.

누워서 발차기는 아직도 정말 못한다. 누워있으면 승모근이랑 목,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힘이 들어가 있다 보니 몸이 앞으로 반듯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자꾸 어딘가에 부딪힌다. 여기에서도 몸에 힘을 빼는 게 관건인데 누워있을 때는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노력하다 보면 요령을 익히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수영 시간은 나와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조그만 성취에도 아주 큰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어서 좋다.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적다 보니까, 문득 저번 달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했던 게임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학과 선생님과 선배들이 제작에 참여 및 출연해서 시청했다. 게임이 무엇인지 묻는 에피소드, 게임이 갖는 개인적 의미에는 무엇이 있을지 탐색하는 에피소드,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에피소드까지 해서 총 3 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두 번째 편(유튜브 링크)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가 게임 같이 상호작용성이 두드러지는 매체들보다는 소설이나 그림, 영화처럼 감상을 주로 하는 매체들을 즐기는 편이라고 규정해왔는데, 두 번째 편을 보고 나서 게이머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편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을 접해왔던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게임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박서련 작가의 말이었다. 박서련 작가는 게임은 내가 계속해서 실패를 해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실제 삶에서도 조금씩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닮은 심을 만들어서 심즈를 플레이하는 동시에 자기 심과 똑같이 하루 일과를 보내는 식으로 실제의 자아를 게임 속 캐릭터와 동기화시켰는데, 이 아이디어가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체육이건 컴퓨터 게임이건 다 잘하지 못해서 항상 구경을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에는 체육 활동과 컴퓨터 게임은 보통 이상의 수준으로 잘하지 않으면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나는 장난으로 놀리는 말들에 혼자서 크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던 어린이였다. 게임을 해도 최대한 다른 사람과 소통하거나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게임들(프린세스 메이커), 쉽게 배워서 할 수 있는 플래시 게임을 주로 했는데,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세대의 대표 게임인 메이플 스토리도 최대한 혼자서 플레이했다.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한 환경,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몬스터를 잡아보고 퀘스트를 깨서 보상을 얻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속도는 좀 느릴지라도 내가 조금씩 잘하게 된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 내가 지금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과 비슷한 결을 갖는 것 같고, 내가 게임을 단순히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서 추구하는 경험이 다르다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새로운 글쓰기 모임과 강의.

비슷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서 새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은 ‘글 칭찬 모임’인데.. 말 그대로 글에 대해서 좋은 점만 말해주는 모임이다. 물론 내용과 관련해된 질문은 해도 되고 ‘이런 것들을 집어넣으면 되겠다’ 같은 조언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잘한 점을 말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다룰 수 있는 여러 파생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내 글쓰기 능력이건 말하기 능력을 검사받거나 평가받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글을 가져가고 이야기하니,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을 통해서 주장하려는 바가 의미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부족한 점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것도, 전반적으로는 지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져야지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지지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코멘트를 주는 것에 숙련되어 있지는 않아서, 어떻게 하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까, 이 점이 항상 고민이기는 하다. 앞으로 모임을 계속하면서 생각을 조금더 해봐야겠다.

11월 중순부터는 팀티칭하는 수업의 강의도 나간다. (드디어..!) 나 같은 극 내향인에게 강의는 너무나도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다. 심지어 대형 강의라서 걱정이 많다. 나는 잘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편인데 그래도 뭔가 잘하고 싶은 욕심도 슬슬 생긴다. 일단은 너무 애쓰지 않고 준비한 것을 잘 전달하는데 집중해야겠다. 아무래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더 긴장을 많이 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말을 이어가야 하는 순간에도 얼어붙어서 메모나 책을 뒤적거리면서 흐름을 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9-10월이 벌써 다 지나갔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날씨도 부쩍 추워졌는데 산책을 더 많이 할 걸, 하루에 두 번은 나가서 목적 없이 걸을 걸, 야외에서 피크닉도 할걸..! 후회가 남는다. 그렇지만 걸어 다니면서 단풍에 물든 나무나 산의 모습들을 눈에 잘 기록해놓았으니 그 장면들을 기억하면서 남은 늦가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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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의 일들 : 일과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