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의 일기 : 운전면허, 여름의 무기력함.
운전면허 따기.
7월부터 면허증을 따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에서 주행시험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경기도에 위치한 학원을 골랐다. 경기도에 위치한 학원에서는 보통 근처의 서울 지역으로 다니는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 학원을 등록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대중교통으로 서울의 집-경기도 운전학원을 통학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사는 곳은 서울의 성수동인데, 학원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학원을 다닌 것과 비슷한 상황….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지상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지상철의 창 밖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들, 그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각진 윤곽들과 맞닿아있는 하늘, 외곽으로 갈수록 더 짙어지는 녹색을 멍 때리면서 보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근무가 없는 평일의 낮 시간과 주말 낮 시간을 활용해서 기능교육과 기능 시험 일정, 주행교육과 주행 시험 일정을 잡았고, 교육 일정을 띄엄띄엄 잡다 보니 면허증 따는 것에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기능이나 주행시험은 다행히도 한 번에 통과했다. (지갑을 지켰음.) 여전히 실제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처럼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자동차를 조작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다 보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잔잔한 희열이 있다. 기능 시험에서는 흔히 주차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시험장에서의 주차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시험장에서는 공식만 외워서 그대로 하면 대충 선 밟지 않게 잘 들어간다. (다만 현실 주차에서는 이런 공식이 통용되지 않으니까 힘든 듯 ㅠㅠ.)
기능에서든 주행에서든, 나는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하고 차로를 잘 찾아가는 것, 차로 위에 차가 비뚤게 놓였을 때 핸들을 조금씩 조정해서 차가 똑바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마 주행 시험 감점도 여기에서 나왔을 듯…. 핸들을 너무 꽉 잡으면 핸들이 원래 위치로 복원되지 못해서 차가 점점 한 방향으로 간다는데, 나는 여전히 긴장하면 핸들을 꽉 잡는다.(핸들에서 손 2mm 정도 띄워놓고 에어 핸들 해야 함..) 그리고 차가 약간 옆으로 갔을 때 핸들을 조금만 돌려서 차로에 차를 똑바로 놓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는 못한다. 너무 신경 쓰면 더 못하는 것 같아서, 시험 볼 때는 먼 곳 보면서 차로 유지는 최소한으로 신경 쓰고 중립기어 유지, 신호 지키기, 적절한 위치에서 깜빡이 켜기 등등…다른 데서 감점 안되려고 애썼다. 지금 잘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서 시험 통과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당분간 차 살 생각은 없지만 운전 연습은 주기적으로 하고 싶다.
여름의 여가 생활 : 게임하면서 누워있는 생활.
이번 여름에는 쉬면서 누워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다. 일을 하고 돌아온 저녁에는 가급적 누워있고, 휴일에 빨래나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도 누워있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에도 누워있었다. 여름 내내 좀 기운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연속적으로 처리하면서 뭔가를 할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겨우 겨우 수영만 다녔다. 여름이 원래 이런 계절 같다. 생산적으로 뭔가 할 수 없는 계절. 보통 이럴 때는 에어컨으로 공기를 뽀송하게 만들면 몸에 기운을 채울 수 있는데, 나는 에어컨의 찬바람을 오랜 시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금방 냉방 모드를 끄고 송풍으로 전환한 다음 제습기를 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해도 생각보다 전기세 많이 안 나옴..) 제습기에서 열이 나오기 때문에 에어컨으로 낮춘 실내 온도는 금세 다시 올라가 버리지만, 공기가 습하지 않으니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더위다. 제습기마저 끄면 점점 공기가 수분을 머금어가는 게 느껴진다. 덥다고 느낄 정도로 습도가 오르는 시점이 되면 또 밥 먹을 시간이라서 식사를 조리한다. 식사를 조리하면서 환기를 한 다음, 요리할 때의 열기를 에어컨 냉방 모드로 낮추면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또다시 에어컨 송풍과 제습기의 조합. 설거지하고 누워있기. 올여름의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밥 먹고 누워있을 때는 게임을 많이 했다. 닌텐도 스위치를 중고로 구입했는데,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게임은 <동물의 숲>이다. 가구들의 종류, 만들 수 있는 요리들, 입을 수 있는 옷의 가짓수도 정말 많기 때문에… 오늘은 무슨 가구, 무슨 요리 레시피, 무슨 옷을 얻을까.. 그런 생각하면서 맨날 접속한다. <스타듀 밸리>, <스티븐 유니버스 어택 더 라이트> 이후로 이렇게 집중적으로 한 게임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재미있는 게임을 만났다. <스티븐 유니버스 어택 더 라이트>는 사실 내가 <스티븐 유니버스> 팬이고 배경 아트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플레이한 것일 뿐, 게임이 아주 내 스타일은 아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마주하는 스테이지들이 있고, 캐릭터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어떤 기술에 투자할지를 결정하고, 적재적소에 캐릭터들을 배치해서 적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스테이지 별 전략이 좀 필요한 편이다.
하지만 <스타듀 밸리>나 <동물의 숲>은 그냥 반복이다. <스타듀 밸리>에서는 게임의 시간 속에서 해야 하는 일과들을 해나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텔레비전을 틀고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 운세를 확인하고 나서는 동거생명체(=크로버스..)와 인사를 나눈다. 밖으로 나가서는 키우는 동물들로부터 알, 우유, 털 등을 수거하고 동물들과도 대강 인사를 나눈다. 수거한 것들은 가공 기계에 넣어서 치즈나 요구르트, 천을 만든다. 그걸 다 하면 농작물 관리에 들어간다. 수거한 농작물을 팔고 빈자리에 다시 무언가를 심는다. 중간중간에 게임 내 NPC인 미스터 치나 마을 사람들이 주는 퀘스트를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스타듀 밸리>의 하루가 거의 저물어 있다.
<동물의 숲>은 게임 시간의 흐름이 현실 시간의 흐름과 같다는 점에서 <스타듀 밸리>와 다르지만, 약간씩 다른 하루가 반복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편함을 확인해서 새로 온 편지나 선물을 확인한다. 마을을 뛰어다니면서 깨어있는 주민들을 찾아서 그들의 취향에 대강 맞춰서 미리 준비해 놓은 선물을 준다. 가게의 신상품들을 구경하고 좀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구입하고 내 집의 분위기에 맞게 리폼해서 배치하거나 일단 묵혀놓는다. 화석을 캐고, 그날그날 새로 열린 과일을 따고, 농작물이 열려있으면 수확해서 음식을 만든다. 계절이 바뀌면서 새로 보이는 곤충들을 잡고, 때때로 주민들과 관계가 좋으면 랜덤으로 발생하는 몇 가지 이벤트를 즐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당히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 같다.)
게임에 한해서는, 플레이어가 정해진 것들을 대강 하기만 하면 (혹은 전혀 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법칙에 따라서 잘 흘러가도록 설계된 세계가 내 취향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접속하지 않거나 접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자라고 잡초가 무성해지고 열매가 자라는 세계가 구현되어 있을 때, 내가 그런 세계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참여하면서 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을 때 좋다고 느낀다.
연구 근황
연구 일기를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생각을 하면서 못쓰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글 앞부분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뭘 쓰고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몰라서 드래프트 박스 안에서 몇 달을 묵힌 상태. 그렇게 묵히다 보면 또 말할 내용이 생각날 수도 있지만, 내가 원래 써놓은 것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예 다른 결이나 시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경우, 사고방식이나 관점의 변화로 미리 써놓은 부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 것이 어려워진 경우가 그런 경우들이다.
미리 써놓은 앞부분을 날려먹지 않으려면 얼른 할 말을 짜내야 하는데 … 여름에는 역시 무리다…. 조금 더 시원한 계절이 오면 뭔가 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연구 근황을 정리하자면.. 아직 심사 결과는 안 나왔지만 논문을 하나 투고했고, 학위 논문 1장을 일단은 마무리하고 2장을 쓰는 중이며, 이번 가을에 발표할 원고를 느릿 느릿 작업 중이다. 여름에 환경 미학 논문을 읽는 세미나를 마무리했고, 일상의 미학에 관한 책을 읽는 느슨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 일들을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하고 또다시 누워있고.. 그런 여름이었다.
8월 넷째 주부터 아침과 밤의 공기가 약간 선선해졌다고 느꼈는데, 다섯째 주부터는 일교차가 커지면서 습도도 내려갔다. 그리고 9월 초가 되니까 새벽에는 제법 추워져서 항상 배만 덮었던 이불로 온몸을 감싸야할 정도가 되었다. 너무 더웠던 여름이지만 그래도 온도와 습도가 바뀌니 제습기와 에어컨도 거의 안 틀어도 되고.. 다른 잠옷도 꺼내야 하고.. 생활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바뀐다. 주변 환경과 일상 속 행동의 작은 변화들에서 계절의 흐름을 느낀다. 가을에는 일어나서 기운을 차리고 하려고 한 것들을 조금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게임이랑 수영은 포기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