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의 일들 : 연구장려금 지원사업과 영화제

연구장려금 지원사업.

4월 말에 학술대회 발표가 끝나고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5월부터 또 팀티칭 강의와 학기말 과제 코멘트를 비롯한 새로운 일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들 중 하나는 인문사회계 박사과정생 연구장려금 사업 지원서를 쓰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는 학생(수료생/석박통합과정생 포함) 대상으로 박사과정 수학과 학위 논문 작성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글로벌박사지원사업이 없어진 이후, 아직 학위 취득 과정 중에 있는 인문사회계 분야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개인 연구 사업은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 B형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 사업이 생겼으니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지원서를 썼을 것이다. 학술연구교수 B형과 연구장려금을 같이 쓴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나는 하나만 썼다. 연구장려금이 반드시 될 것이라는 근자감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나에게는 두 개를 다 쓸 기력이 없었다.

박사 학위 취득 전후로는 학술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분투들(강사 생활, 연구 사업 지원, 논문 출판)이 이어진다. 특히 논문을 출판하고 강의를 지속하는 것은 나중에 대학교의 교수직에 지원할 때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끊임없이 그리고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강의 노동에 대한 임금이 지불되는 것과 달리 연구 및 논문 출판은 임금을 받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대학교의 정규 교원이 되어서 교내에서 연구비를 지원을 받는 경우는 제외.) 그렇기에 박사 학위를 갓 딴 혹은 학위 취득 예정인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 시간에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논문을 쓰지 못하면 그만큼 임용에서 탈락할 확률도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원사업이 선정되지 않아도 논문 출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의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한 각종 노동을 하면서, 그 외의 시간을 휴식에 쓰지 않고 모조리 연구에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평일 밤과 주말 시간, 가끔은 새벽까지도 일을 위해서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에도 연구를 시작한 이유를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전략들(핸드폰 멀리하기, 뽀모도로 기법 사용..)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생산성 도구들의 사용을 기꺼이 배우고 활용하는 사람 등등이 되어야 한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돌리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마음 가짐을 단순하게 갖고 연구 동기를 다잡는 성실 인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자 상’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하고 운이 좋아야 겨우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교수직 지원은 그냥 해보는 것일 뿐.. 그걸 최종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고 다른 길을 항상 열어놓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요즘에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들은 책임감을 갖고 임하지만, 그 외의 일들은 그냥 생각나면 한다. 또 남의 눈치 보면서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입시나 일들을 거치면서 내 정신이 ‘휴식 시간 줘!’, ‘일 너무 많이 하지 마!’, ‘이런 거면 못해!’라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사업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도 ‘그렇게 까지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싶어서’라고 할 수 있다. 지원서 하나 완성하는 것도 꽤 오래 걸리는데.. 두 개의 사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활동들(초안 작성, 피드백받기, 수정, 퇴고, 완성 등의 과정..)과 그것에 걸릴 시간들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면 다른 일들을 못하거나 휴식시간을 반납해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학술연구교수 B형은 지원 기간이 1년이고 내년에 또 해야 한다는 점이 약간 현타 와서.. 좀 더 지원 기간이 긴 것을 골랐다. 연구장려금 경쟁률은 대략 5:1로 꽤 높은데 운 좋으면 되는 거고.. 아님 안 되는 거고..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지원서 쓰면서 논문 방향성도 많이 잡히고 또 그 과정에서 학위 논문 작성할 힘도 약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자 이제 논문을 얼른 쓰기만 하면 되는데..!

무주 산골 영화제와 캠핑

‘휴식 중요해 인간’이 된 다음부터는 큰일이 끝난 다음, 진짜 온전하게 쉬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팀티칭 강의 끝나고 본격적인 채점과 평가 업무가 시작되기 전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무주 산골 영화제는 2013년에 1회가 열렸을 때 처음 갔었다. 그때 내가 그 영화제 정보를 어디에서 알아내서 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독립영화관을 자주 들락날락하던 시기라서 거기에서 정보를 봤을 수도 있고, 뭐 아니면 문화/예술계 행사를 모아놓은 소식지에서 확인했을 수도 있다. 사람도 없고 조용히 휴식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 동생을 꼬셔서 같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당시 생산성을 중시하는 초성실 학부생이었어서… 하루에 영화도 2-3편씩 보면서 남는 시간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기말고사 공부도 같이 했고… 동생은 그런 나를 비난하면서 다음부터는 자기 친구들과 영화제를 따로 갔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는 학부 졸업반이 되었고.. 어찌어찌 대학원에 왔고.. 기말 페이퍼를 써야 했고.. 학위 논문을 써야 했고.. 내가 정신을 쏟았던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영화제를 다시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이동이 쉽지 않았다는 것, 뚜벅이 방문자가 차 없이 갈만한 거리에는 좋은 숙소가 많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차가 있는 동행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차가 있어서 숙소도 꼭 무주 시내에 예약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하루는 덕유산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10년 만에 다시 가니 그동안 영화제 규모도 커지고 방문객수도 늘어나서 이제는 지역 축제로 잘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1회 때는 서울우유에서 후원받은 커피 우유(그 당시 신상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이름도 기억 안 남.. 맛있었는데..)가 페스티벌 현장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푸드 앤 베버리지 부스도 생겼다. 트래쉬 버스터즈도 왔다. 수도권에서 하는 대형 페스티벌에서는 다회용기 업체가 있어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좀 덜 그랬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회용기에 음식과 음료를 받아먹었고, 곳곳에 쓰레기통도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도 적었다. 정말 쾌적한 페스티벌… 나는 실내 상영은 예매를 못해서 하나도 못봤고.. 야외에서 무료 상영하는 영화들을 많이 봤다. 영화 보다가 자다가 뭐 좀 먹고, 영화 보다가 자다가 뭐 좀 먹고…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캠핑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캠핑 장비는 동행이 다 준비해 와서 나는 그냥 몸만 갔는데 텐트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리는 꿈도 못 꿈. 밥은 그냥 근처 식당에서 다 사 먹었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자려고 하니 잠도 잘 안 와서 거의 날밤을 샜다. 하지만 숲 속에서 잠을 안 자고 깨어있으면… 도시에서 못 듣는 새소리도 들을 수 있고, 가끔 밖에 나와서 적막에 빠진 고요한 숲도 관찰할 수 있고..그래서 초조하거나 긴장한 느낌이 덜 든 것 같다. ‘내가 자연 속에 있구나..’그런 느낌으로 그냥 말똥말똥한 채로 있었다.

무주산골영화관 옆의 지남공원.

새로운 과제 : 운전면허 취득.

무주도 그렇고 이번 상반기에는 남의 차 타고 편하게 다닌 경험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차는 없더라도 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필기시험은 대충 해서 합격했다. 하지만 차를 실제로 조작하는 기능시험부터가 진짜 고역일 것이다. 나는 춤이든 운동이든 기기 조작이든, 신체 동작을 포함하는 활동을 익히는 것에 꽤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 새로 배울 때 지나치게 긴장을 많이 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온 얼굴과 몸이 분주해지는 경향이 있다. 수영 배울 때에도 항상 선생님의 언어적 설명을 이해하고 적절한 동작으로 출력해 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건 단지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수영 유튜브를 보면서 다른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 심지어 닌텐도 스위치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 설명 듣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여러 번 해봐야 동작 출력 가능함.) 운전에서는 또 얼마나 그럴까..? 내가 잘하지 못할 것은 너무 분명한데, 그런 나 자신에게 좌절감이나 실망감을 너무 크게 느낄 것 같아서 지금까지 운전을 배울 생각을 못했다. 그렇지만 수영을 배우면서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시기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운전에서 경험할 좌절감도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면허 1년 안에 꼭 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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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의 일기 : 운전면허, 여름의 무기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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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의 일들 : 학술대회 발표, 팟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