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월의 일들 : 학술대회 발표, 팟캐스트.

학술대회 발표

3-4월은 4월 말에 예정된 학술대회 발표 때문에 바쁘게 보냈다. 논문 쓰는데 필요한 기존 논의들은 대강 숙지하고 있었고, 그 논의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도 분명했기에, 내용만 만들어내는데 집중해서 초고를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학위논문 작업은 스탑..) 초고 내용이 결정된 후 2주 동안은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초고에 대한 몇 차례의 윤문과 오탈자 교정 작업만 했고, 발표논문 최종본을 내고 난 다음 2주 동안은 발표 자료를 완성하는 작업을 했다.

생각해 보니 3년 전에도 논문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2020년은 코로나가 국내에 막 퍼지면서 많은 교내의 학술 행사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던 시기였고, 발표자나 논평자의 발표 녹화 영상을 송출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는데, 그때는 발표에 익숙하지 않았고, 발표 영상 녹화를 마친 다음에도 스스로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힘들었었다. 그렇지만 3년 동안 몇 번의 강의나 발표를 거치면서… 나도 조금의 노련함이 생긴 것일까.. 이번 발표도 ‘정말 재미있는 발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들을만한 발표’를 했다고 생각한다. ‘발표나 강의나 그런 것도 연구처럼 계속 붙들고 있으면 늘기는 하는구나..’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계속 버텼을 때 생기는 ‘노련함’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논문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PPT에 요약된 내용들을 대본 없이도 전달하고, 어떻게든 완결된 문장으로 말하는 것 등과 관련된 노련함뿐만 아니라, 내 논문의 주장이 어디까지 설명해 줄 수 있고, 어떤 의의를 지닐 수 있는지 확장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의 정의에서 가치있는 산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가? 아닌가?” 라는 너무 좁은 논점을 다루다 보니, 사실 나도 내 논의가 확장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말하기가 어렵다. 동물의 창의성이나 인공지능 기술이 창의적일 가능성, 집단과 사회의 창의성을 다루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사실 내 논의도 아직까지는 인간의 창의성을 주된 사례들로 삼고 있고, 그런 사례들을 표준으로 삼은 정의가 기계, 동물, 집단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회의적인 입장이 이미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창의성’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 인간이 뭔가 만들거나 수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탁월한 심리적 역량’이 아니라, 뭔가를 만들거나 수행함으로써 이루는 ‘특정한 유형의 성취’를 의미한다면, 인간 아닌 주체가 이런 유형의 성취를 이룰 가능성을 논해볼 여지는 있다는 점에서 더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특정한 유형의 성취를 이루는 것에 관여하는 집단의 행위자성, 동물의 행위자성이 무엇인지 별도로 논해볼 수 있는 것… 아직 공부가 덜되어서 생각이 구체화되지 못한 것이 문제긴 하지만, 차근차근 필요한 단계를 밟아나간다고 생각해야지…

학술대회 발표 준비를 대충 마무리하고 나서는 다시 중단했던 학위논문 작업도 시작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글과 목차를 다시 보려면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쓰던 논문이라도 1달 넘게 동안 안 보면 너무 낯설다고 해야 하나. 내가 이전에 어디까지 해놓았는지를 기억을 더듬어서 찾아가야 하고, 쓰기를 위해서 머리를 예열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5-6월은 학기말이라 글쓰기상담도 더 많아질 것 같고… 팀티칭 강의도 시작해야 하고.. 지원서를 쓸 일도 생겼고… 채점할 과제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로 또 바빠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졸업할 수 있겠지요? 🥲

(발표 자료는 별도의 페이지에 업로드해놓았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개인적인 공부 용도로만 참고해주세요!)

바쁜 일상을 채워주는 것들 : 요리와 팟캐스트.

학술대회 발표가 끝난 후 오랜만에 조리와 정리가 조금 귀찮은(?) 음식을 해 먹었다. 라자냐가 그런 음식인데 그 이유는 일단 과정이 여러 단계로 이뤄지고(야채 썰기, 면 삶기, 야채 볶기, 소스 익히기, 면과 소스, 치즈를 쌓기, 오븐에 또 익히기..) 그 과정에서 냄비, 프라이팬, 오븐용 그릇 등 설거지 거리가 엄청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쁜 시기에는 라자냐 같은 요리는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라자냐 면이 찬장에서 말라가는 것을 볼 수가 없었고, 또 발표 마치고 쉬는 김에 긴 시간을 조리와 설거지에 쓰면서 논문 쓰기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삶의 보람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라자냐를 해 먹었다.

나는 라자냐에 양파, 버섯을 무조건 넣는다. 그리고 가지, 애호박, 당근 중 하나를 아무거나 넣는다. 육고기나 해산물 대신 두부를 으깨서 소스에 넣고, 식물성 모차렐라 치즈를 넣는다. 사실 연초에 라자냐를 종종 해먹을 생각으로 식물성 모차렐라 치즈를 많이 구입해 놨었는데.. 올해에는 생각보다 라자냐를 해먹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그 치즈들은 대체로 볶음밥에 뿌리는 용도, 샌드위치 빵에 뿌려서 구워지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식물성 치즈는 음식에 기름지고 끈적한 맛을 더해주진 하지만, 우유 베이스로 만들어진 동물성 치즈의 풍미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식물성 모차렐라가 들어간 음식들을 몇 달 정도 먹다 보니, 유통기한이 동물성 유제품에 비해서 좀 긴 것도 장점 같고..  나름대로의 풍미를 가진 맛있는 대체제인 것 같다.

음식을 해 먹고 정리하기는 나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삶의 필수 활동이기도 하지만.. 다음 끼니에 뭐 먹을지를 고민하고 그 맛을 상상해 보고, 내가 먹을 밥을 직접 요리해 먹는 일이 매일매일에 활력을 주는 활동이기도 해서 포기할 수가 없다. 사실상 요즘 가장 즐기고 있는 활동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요리를 즐기지만,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리 외에도 나의 일상을 활력 넘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팟캐스트이다. 재작년부터 친구 추천으로 두어 개를 파편적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듣는 팟캐스트 수도 늘어났고, 몇 개의 경우 새로 업로드되는 에피소드를 오매불망 기다리기도 한다.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널거나 걸레질을 할 때, 걸을 때,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팟캐스트를 듣는다. 나는 진행자들이 자기 삶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것들에 대한 감정, 생각을 업데이트해주는 팟캐스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단순히 나의 일상의 모양이 진행자들의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진행자들의 텐션, 취향, 감정과 사고의 흐름은 나와 다르기도 하고, 나에게는 꽤 극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흐름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몇 개의 문장이나 한 편의 짧은 글로 압축되지 않고 오디오 버전으로 느슨하게 풀어질 경우, 뭔가 이해를 위한 맥락들이 더 풍성하게 차있는 느낌이 든다. 글을 읽을 때는 아무래도 직업병 때문인지 자동적으로 평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들을 때는 덜 그런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면면을 접하는 것이 즐겁다.

저번달에 재미있게 들었던 팟캐스트는 <에세이 클럽>이다. <에세이 클럽>은 에세이를 쓰는 여성들이 모여서 만드는 팟캐스트인데, 몇 개를 조금 들어보다가 첫 에피소드에서부터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질문과 더불어서 관련해서 이야기할 거리들을 미리 꼼꼼하게 정리하고 준비해 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비교적 딴 길로 덜 새는 편이고, 그런 게 내 강의 스타일과 일치하기도 해서 뭔가 좋았다. (물론 저는 딴 길로 많이 새는 팟캐스트 듣는 것도 즐깁니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글쓰기 상담을 할 때 학생이 ‘자기 삶이나 인생에 관한 에세이 쓰기’ 과제물을 들고 오면 난감할 때가 좀 있다. 특히 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이 질문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경험을 갖고 있고, 그것들을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방식이 다 다를 텐데, 설득력 없는 과잉 의미부여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그냥 표현만 분명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 경험을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재구성했는지 여부이며, 여기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에세이도 전문적인 글쓰기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음에는 학생이 에세이 과제를 가져오면 흥미로운 전개를 위한 내용 서술 순서라던지, 경험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의 전형적인 방식에서 탈피하는 방식, 다른 사람과의 경험을 어떻게 서술할지와 관련된 윤리 정도는 지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로서 유명해지는 일은 드물다. 에세이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나도 소설가, 기자, 비평가 등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더 ‘가벼운’ 글로 풀어내는 장르가 에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캐럴라인 냅처럼 자전적인 에세이로 유명한 작가가 된 사례들이 해외에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세이만으로도 한 사람이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더불어 전문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 팟캐스트를 통해서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듣기를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맨 처음 4개 에피소드와 더불어서 “에세이를 둘러싼 오해들”입니다.) 이번달부터 학기말까지도 많이 바쁘겠지만, 에세이 읽기로 나에게 또 다른 숨구멍을 열어주고 싶다.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진다고 해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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