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미학과 나
분석미학을 선택했던 이유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전공하는 학문에 관해서 아무도 묻지 않길 바라는 마음. 이건 회사원에게 회사에서 무슨 일하냐고 물을 때의 회사원의 심경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연구하는 것도 내 일이므로 내가 이 학문을 왜 택했는지, 이 학문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싶은 것인지 조금이라도 설명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대학원 생활이란 이 두 마음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낀 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닐까 싶다.
내가 세부 전공으로 분석미학을 선택했을 때의 기억을 곱씹어보면, 나는 꽤나 명확한 근거를 갖고 이 전공을 선택하였다. 졸업을 하려면 학위 논문을 써야 하고, 학위 논문을 쓰려면 분석 미학의 많은 논문들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논문들과 비슷한 형식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 분석 미학 논문들은 재미가 있고, 이 논문들의 관점이나 논리를 따라서 문제의식을 다듬고 글쓰는 것은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이 전공의 학위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분석 미학을 골랐다. 당시의 나는 그 세부 전공에서 요구하는 글을 쓸 수 있을지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논문도 많이 읽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정작 글을 쓰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니까 말이다.
물론, 실용적인 이유 외의 다른 이유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유에 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분석미학이 현상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나 문제의식을 다듬는 방식에 은근한 친밀감을 느꼈는데, 이러한 감정은 뭔가 소리내서 말하기 쑥스럽기도 하고, 연구는 친밀감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석사 시절의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전공 분야에서 이뤄지는 논의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관련 지식들을 숙지하는 것, 학위 논문을 쓸 수 있도록 글쓰기를 훈련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지금도 중요하고, 아마 논문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이에 관해서는 계속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석미학에 대한 나의 은근한 친밀감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무게를 잃고 계속 어디론가 흩어져버려서 다시 불러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새는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놓은 그 친밀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심리학과 분석 미학
나는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고등학교 때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어떤 것을 전공할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서 심리학을 전공하겠다고 공표했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전공 이해는 거의 전공-직업군 연결하는 정도에 그치는 듯.) 하지만 대학교 진학 후 나는 다행히도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한다는 소갯말도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무엇보다 좋아했던 것은, 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마음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인식이 심리학 내부에서 공유된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심리학 논문들은 서론에서 연구 배경을 설명하고, 본론에서 실험 방법과 결과 등을 소개한 후, 결론에서 이러한 실험 결과가 갖는 함축을 소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 앞으로의 연구에서 쓰임새뿐만 아니라, 이 실험 결과가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과연 이 실험이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 경향성을 대표할 수 있는지도 언급된다. 이런 한계를 언급하는 것은, 실험과 통계라는 기법을 통해서 포착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자칫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형식적으로라도 포함하는 구조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험을 통해서 확립된 인간의 마음의 작동에 관한 주장이 모든 현상에 대해서 과하게 일반화될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실험이 밝히는 것은 인간 마음의 작은 일부일 뿐임을 인정하는 태도, 잘 설계된 실험을 통해서 지금 이 주장을 더 잘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 다음 세대의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생이 될 때는, 내가 전공할 학문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서 고등학생 때보다는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미학 안의 세부 전공인 분석 미학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고, 시험 준비를 할 때 분석 미학에서 이뤄진 논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미학'이라는 좀더 큰 범주에 포섭되는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어떤 세부 전공이 있는지에 관한 소개를 들을 때, 처음으로 분석 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석 미학은 보통 예술과 미와 관련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소개되고, 내가 대학원에 처음 진학해서 들은 설명도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모든 학문이 각자의 방식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분석 미학의 역사 속에서 연구자들이 미와 예술의 주제들을 다뤄온 방식, 어떻게 질문을 만들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떤 관점과 논리를 통해서 모색하였는지, 연구자들 간에 발생한 논쟁의 양상을 면밀히 살피는 것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나름의 답변을 내놓는 것 또한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내가 분석 미학에 대해서 느꼈던 은밀한 친근감은 바로 모든 학문에서 지향하는 '합리적인 설명'을 버젓이 소갯말에 걸어놓았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학부 때 봤던 심리학의 소갯말에도 비슷한 문구가 등장한다.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한다. 모든 소갯말은 이렇게 두루뭉술한 걸까. 나는 저 소갯말을 심리학의 첫 전공 수업에서 들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문구라서 그런가 싶으면서도, 또 너무 특색 없는 것이 아닌지, 당연한 걸 말하는게 아닌지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소갯말 때문에 친근감을 느낀 것 같다. 자신의 알맹이를 포장없이 내놓는 무덤덤함, 딱히 큰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소박한 표현, 알맹이에 살을 붙이면서 자기 나름의 답변을 성실하게 만들어가는 연구자들.
대학원에서 분석 미학 논문들을 읽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나의 친근감은 잔잔하게 유지되었다. 분석 미학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하기 앞서서 관련된 논의의 맥락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특별히 겨냥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왜 그 부분을 겨냥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자신의 주장과 문제 의식이 설득력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논의의 맥락을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에 관해서도 다양한 접근과 재구성이 가능한 것을 보고, 나도 이 안에서 연구자로서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가졌던 것이 아닐까.
물론 심리학과 분석 미학은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나는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보다는 철학적인 방법론이 나에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 미학을 공부하기로 정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두 학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친근감을 느낀 부분은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석 미학을 연구하는 즐거움
사실 나한테 연구나 공부는 기본적으로 일이고, 연구에서 즐거움이 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항상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연구나 강의 활동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졸업 이후에도 내가 고등교육 기관에 소속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지, 내가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지금 소속되어 있는 기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그리고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공적 이미지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등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사회인으로서 기능한다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속과 공적인 지위가 있어야 한다. 강의나 연구재단 사업 지원 등 기회가 닿는대로 뭔가 하였다. 그것이 연구자로서 삶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사는 시대는 연구를 즐겁게 또는 열심히만 하면 이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가 일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당장 몇 년 후에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지금 더 일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 가끔씩 불안에 잠식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불안해 하는 대신, 내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자주 생각해보려고 한다. 무엇에 즐거워 했는지 잘 기억하면, 나중에 내가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그 기억 다발이 선택의 이유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먹고 사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연구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이 삶의 팍팍함이 묻어나는 메마르고 퍽퍽한 기억 뿐이라면, '왜 연구를 하세요?'라는 질문은 별로 답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질문이 된다. 그런 질문들에 항상 멋쩍은 웃음과 냉소로 일관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 모든 상황에서 열심히 답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별것 아닐지라도 내가 좋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모아서 정성어린 답변을 천천히 만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적어도 내가 학문에서 느꼈던 은근한 친밀감을 져버리지 않는 길, 그 친밀감을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cf. 분석 미학 전공에서 같이 공부하는 다른 동료 연구자도 ‘분석 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다. 너무 재미있었고.. 분석미학과 맞는지 알아보는 간단 테스트에서 나는 7개 중 7가 해당되었다는 이야기... (이정도면 운명이 아닌가 싶다😇) 내 전공과 관련해서 다른 분위기로 쓴 글을 읽고 싶으면 확인해보아도 좋다. ☕️https://brunch.co.kr/@wannabeph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