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일들: 논문 투고와 학기의 시작.

학술지 논문 투고

학술지에 두 번째 논문 투고를 마쳤다. 학술지 투고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논문 쓰는 스타일, 수정 스타일 같은 것들이 대충 보여서 이런 것들을 조금씩 더 다듬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해외 학술지에도 투고해보고 싶고, 해외 학술지의 찐한 에스프레소 같은 피어리뷰를 받아 보고 싶다. (“제발 받아주세요..ㅜ.ㅜ!”를 외치면서...밤잠을 설치겠지...)

나는 심사위원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꽤 고민하는 편이다. 어떤 의견들을 어느 수준으로 반영할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수정하는 작업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각주 추가로 질문에 답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도 있지만, 질문 내용에 따라서 내용을 아예 다시 구성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수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좀 줄여야 할텐데 고민이 된다.

글이 너무 안써지거나 어떻게 재구성할지가 잘 생각이 안나면, 나는 한글 파일을 닫고 글을 ‘수술대’로 옮겨온다. ‘수술대’는 맥OS, iOS에 기본 장착되어있는 메모 앱이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대 위에 수정해야 하는 단락을 옮겨온 다음에 내가 뭘 해야하는지를 맨 위에 적어놓고 내용을 고치다 보면, 한글 파일 속에서 고칠 때 보다는 조금 생각이 잘 나는 것 같다. 그렇게 수술대에서 재구성되어 새로 태어난 단락들을 다시 한글 파일 안으로 붙여넣으면, 그 절에 대한 수정 작업은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다.

편집본을 만들기 전까지는 논문의 전체적인 흐름과 부분들의 연결을 중심으로 퇴고를 하지만, 편집본을 받아서 퇴고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 때는 내 논문이 어떤 양식에 따라서 출판될지를 볼 수 있다.) 편집본을 받고나서는 어색한 표현이나 문장들에 신경을 써서 보고, 또 고칠 것이 한아름 나온다.

나는 퇴고를 할 때는 인쇄를 해서 보는 편인데, 인쇄한 논문을 읽으면서 펜으로 고칠 부분을 체크하고 그 부분을 컴퓨터에서도 고치고 난후에는, 수정 완료된 페이지를 한장 한장 찢어서 버린다.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담아서 열심히 찢는데, 이렇게 하는게 습관이 되었다. 연구자들마다 자기 나름대로 논문을 쓰고 고치는 스타일이 있을텐데,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새학기의 루틴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이번학기도 저번학기에 이어서 대부분의 수업이 줌으로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외출도 줄고, 수업도 대부분 실시간 강의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방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활동량이 많지는 않지만 방 안에서 무기력하지않게 하루를 보내려는 루틴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다.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 같은 시간에 식사하는 것, 식사할 때 많이 열심히 먹기, 요가 등...)

이렇게 루틴이 자리 잡혀있을 때의 좋은 점은 예상치 못한 사건에 조금이라도 덜 휘청거리고 그 사건을 내가 일하는 시간 중에 해결해야 하는 일처럼 대하는 태도가 생긴다는 점 같다. 살다보면 갑자기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정해진 일과 시간 안에 그 할일을 끼워넣고 이 일은 대충 이 시간 안에 마무리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고 어느정도 진행을 해놓은게 있으니, ‘다 못한 부분은 다음 일과 시간에 끝내자..’이렇게 생각하고, 조금 덜 좌절한다. 루틴이 만들어낸 습관 속에서 일을 시작할 동력을 찾고 좌절에 빠져있는 시간을 줄여나간다.

정해진 루틴 속에서 부지런히 나를 굴리는 것은, 해야 하는 일들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을 직시하는 것과 다른 일이고, 후자 또한 일하는 자아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전자에 집중하다 보면, 냉소, 피곤함, 좌절감, 허탈함, 직업인으로서의 희열(?) 등에 주의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런 감정과 느낌이 생긴다면 굳이 억누르려고는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경험을 해보는 것이지.

새학기의 수업들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 시간에서 읽어오라고 하는 논문들을 읽는데 시간을 많이 쓰게 된다. 이번 학기에도 두개의 수업을 듣고, 그 중 하나는 철학과 수업이어서 읽어야 할 논문들의 리스트가 매우 많다. 그나마 선생님께서 다음주에는 무엇을 중심으로 나갈지를 미리 알려주셔서 집중해서 읽을 것을 추리는데 도움이 된다. 철학과 수업시간에서 요즘 다루는 주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양립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논의의 특징은 SF소설에 등장할 법한 사례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기묘한 방식으로 조작되어서 행위하는 사람들(예를 들면, 뇌과학자에 의해 뇌가 특정한 상태 하에 있도록 매 순간마다 조작당하는 사람,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조작해서 특정한 성격과 행동 패턴을 갖도록 조작당하는사람 등)이 자유로운 행위를 하는지, 이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도덕적 책임을 지는지에 관한 우리의 직관을 시험하기 위해서 등장한다. 그런 설정 때문에 자꾸만 유전자 조작이 상용화된 혹은 전자뇌이식이 가능해진 근미래에 관한 SF소설이나 영화를 생각하면서 공상에 빠지는 시간이 잦아진다.

9월 동안은 수업 별로 로드가 어떻게 되는지, 그에 따라서 시간 분배를 어떻게 하면서 논문을 읽어야 하는지 파악했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는 발제가 2번 정도 있을 것 같은데, 10월 초부터 준비해야지 논문 리딩도 대략 하면서 발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미리 내가 언제 바쁠지 생각해놓고 마음의 준비를 해놓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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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과 11월, 12월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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