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월의 일들 : 교토 여행.

2022년의 마지막 두 달은 상당히 바쁘게 보냈다. 원래 하고 있던 글쓰기 튜터 일 외에도, 팀티칭하는 강의가 시작되어서 4주 동안 매주 하루는 이른 기차를 타려고 동도 안 튼 새벽에 일어났다. 2개 분반의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채점도 했다. 학술지에 논문 투고도 했다. 학위 논문 작업은 매일 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논문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기운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지만 나한테 이번 연말은 교토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교토 여행

팀티칭하는 강의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교토로 떠났다. 채점하고 성적 처리하는 기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그 기간 동안 빠르게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일본에서도 관광객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방학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토와 오사카 포함해서 일주일 머물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가진 교토가 더 마음에 들었다. 산책을 하면서 잘 관리된 전통 가옥들,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은 현대식 가옥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건널목들과 야외 역사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의 도심에서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야외 역사도 있었는데, 그 역에서 1-2량 정도의 짧은 전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하염없이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머무르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관광지나 시내 위주로 바쁘게 다녔는데, 조금 더 머물렀다면 여유를 갖고 동네 이곳저곳을 더 걸어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교토에서 주로 방문한 관광지는 신사, 절, 박물관, 미술관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들은, 아라시야마에 있는 텐류지라는 절,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 무라사키 시키부 기념관이었다. 아라시야마 역에 내려서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식당과 기념품 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면 텐류지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텐류지는 멋진 정원을 가진 절이다. 건물 안에서 밖으로 시선이 닿는 모든 야외 공간들을 굉장히 잘 꾸며놓았는데, 그래서 절의 내부보다는 밖에 더 볼 것이 많다고 느꼈다. 아라시야마는 텐류지 외에도 대나무숲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대나무숲보다는 텐류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강의 지형이 마음에 들었다. 강변에 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산을 타고 올라가면 주변 산과 강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산을 구성하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따라가 보는 그 경험이 무척 좋았다.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은, 오카자키 공원 근처에 있는 미술관이다. 근대에 지어진 건물에 다른 건축물을 이어 붙여서 만들었는데, 두 건물이 잘 어울려서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옛날 건물에 이어붙이는 건물은 현대의 기술을 활용해서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미술관의 경우에는 새 건물을 원래 있던 건물보다 높게 짓지 않고 컬러톤도 최대한 맞춰서 지었다. 그래서 보기가 좋고 조화로웠던 것 같다.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 전을 봤다. 사실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은 워낙 익숙하기도 해서, 전시를 그렇게 기대하면서 본 것은 아니었는데… 워홀의 초기 드로잉 작업까지 다 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캠벨 수프>를 만들고 <브릴로 박스>를 만들기 전의 워홀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었다. (워홀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 했고…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억하려고 했던 그런 사람 같다고 생각함..)

무라사키 시키부 기념관은 교토교엔 근처에 있는데,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사실 나도 찾아보고 갔던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것에 가까웠다. 원래는 교토고쇼를 가려고 했는데, 교토고쇼가 위치한 교토교엔이 너무 넓어서 지치기도 했고.. 또 교토고쇼는 열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대학교 근처의 카페나 가자는 마음으로 교토대를 향해서 걷다가 ‘세계 최초 여류 소설가 무라사키 시키부’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보게 되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땅에 이 기념관을 건립한 것 같았다. (틀릴 수도 있음..) 아무래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오는 곳은 아니어서 그런지, 기념관에 전시된 물품들에는 영어 설명이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이 물품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기념관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기념관에 딸려있던 정원의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이 갔던 친구는 여행하는 동안 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라는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녔는데, 정세랑 작가의 간사이 지방 여행기에서 무라사키 시키부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해줬다. 정세랑 작가는 책에서 무라사키 시키부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이상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그런 일이 거의 1000년 전에 살았던 이 작가에게도 일어났을까를 상상해서 그런지,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사실 오사카도 방문하긴 했으나.. 오사카보다는 교토에 더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교토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신사이바시 같은 오사카 도심부는 서울의 명동이랑 비슷해서 그런지 특별하게 다른 문화나 감수성이 통용되는 공간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매우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무수히 많고, 사람들은 거기에서 또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사가는.. 그런 곳이었다. (돈키호테에서 반창고 하나랑 바셀린 하나 사가는 관광객.. 나와 내 동행 밖에 없을 듯..) 오사카도 더 오래 머물렀다면 다른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교토와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또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계속되는 수영.

수영을 배운 지는 이제 3개월이 넘었다! 수영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주 1회 정리를 하는 중인데, 그렇게 정리한 기록들을 쭉 보면, 예전에는 발차기를 아무리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절망했던 시절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의 삶은 보통 미래에 내가 이뤄야 하는 과업(수영의 경우, ‘다음 반으로 진급하기, 킥판 졸업하기’)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거기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현 상태를 조금 모자라거나 별로인 상태로 보기가 쉽다. 그래서 빨리빨리 수영 실력이 늘지 않으면 조급한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전의 내가 뜨지 못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해서 쩔쩔맸던 시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정도 수준에 이른 것이 너무 기특하다. 수영에서 내가 고쳐야 하는 부분들, 여전히 잘 못하는 부분들은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잘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록을 보다 보면, ‘꾸준히 몇 개월을 하다 보면 그것도 앞으로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확신이 생긴다. 올해에도 수영을 잘 배워서, 나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을 꾸준히 주입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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