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을 읽고.
『다섯 번째 계절』은 N.K.제미신의 연작 소설 중 가장 첫 번째 소설이다. 나는 제미신이 그리는 종말 이후의 세계관이 어떠한지, 그리고 종말을 마주한 사람들의 태도를 어떻게 그리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나, 첫 번째 소설만으로는 아직 내가 궁금한 부분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이제 막 종말이 시작된 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 번째 계절』은 그 외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었다.
나는 과학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소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어떤 지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갖는지 여부를 탐색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 계절』은 사회의 관습, 기술 발달의 수준 등 많은 요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소 달랐기 때문에, 뒤의 용어 해설을 뒤적이면서 소설의 서사를 꼼꼼하게 따라가야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내 흥미를 자극한 것은, 소설 속 세계가 현실과 다른 관습과 문화를 갖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끊임없이 동요하고 흔들리는 고요 대륙이라는 땅’과 ‘그 땅의 힘을 느끼고 사용할 수 있는 보님 기관을 지닌 오로진’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두 가지는 『다섯 번째 계절』의 중심축이 되어서, 소설 세계 속 사회 체계와 문화를 만들어낸다. 고요 대륙의 불안정함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의 쓸모와 유용성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체계를 만들어냈고, 지각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 오로진들을 핍박하고 혐오하는 문화를 낳았다. 오로진이 지닌 보님 기관은 실제로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기관이지만, 지진을 진정시키고 쓰나미를 막고, 화산을 잠재우는 등, 대륙의 불안정함을 안정시키고 산제 제국의 영속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만 사용되었다. 펄크럼은 오로진이 그러한 용도로만 보님 기관을 사용하도록 그들을 훈련하고 통제하는 기관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오로진이다. 서사는 세 명의 오로진 여성이 겪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았는지, 그 안에서 어떻게 평범한 삶을 갖고자 발버둥 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지가 자세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오로진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옳지 않다는 감각을 숨기고, 불쾌한 기억들을 능글맞은 웃음이나 냉소적인 비아냥으로 감추는데 능한데, 그 점 때문에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기도 했다. 이 소설의 백미는 그러한 어려움이 풀리는 순간에 있다. 주요 등장인물인 세 명의 오로진 여성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왜 그런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넘어갔던 대사나 감정 표현’들이 맥락을 부여받으면서 조금 더 이해 가능한 것들이 된다. 시에나이트는 자신을 굴복시키는 사회 체계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오로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둔치들(ex. 알리아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한다. 에쑨은 딸과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비하하는 말들(ex. 나 따위는 그런 것을 바라면 안 되었다던지, 나는 저주를 받았다던지)을 자주 한다. 『다섯 번째 계절』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주인공 일행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표현하는지를 그 배후의 심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독자가 짜 맞추어 가게끔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로진을 억압하고 혐오하는 문화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큰 정신적 상흔을 받았는지가 서서히 드러낸다.
만약 사람들이 오로진 인간을 구타하거나 때리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그다음으로 내면에 상처를 입은 오로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골적인 방식이었다면, 내래이터가 오로진을 혐오하는 역사나 문화가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설명했다면, 오로진의 입장에서 이들이 겪었던 억압이 어떻게 경험되었는지를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제미신이 주인공들의 감정 표현이나 대사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묘사하지 않은 이유, 서사를 시간 순서에 맞춰서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현실 속 소수자들의 감정이나 외침이 드러나는 방식이 이것과 비슷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 세계의 혐오와 차별은 노골적이지 않다. 특정한 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은, 부당한 요구나 이해 불가능한 감정으로 간주된다. 현실 속 소수자의 요구나 감정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맥락은 자주 누락된다. 우리는 이 맥락을 잊지 않고 기억한 다음, 적절한 부분에 집어넣어서 퍼즐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러 사람의 시점을 넘나드는 『다섯 번째 계절』의 서사 진행은, 단순히 독자의 집중을 방해하는 어렵고 정교한 구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