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자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법
강은희, 이빈소연, 무병장수, 양윤화 (기획: 권정현) ⟪믿음의 자본⟫ 2021.08.23-2021.09.19 @SEMA Bunker
요새 나는 집을 구하기 위한 준비를 이것 저것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유튜브랑 블로그 글만 많이 봤을 뿐, 부동산 실물 보러다니는 것은 거의 시작단계이다. 일단 임차보증금이자지원 사업만 신청해서 승인을 받은 상태인데, 승인을 받고 난 후 3개월 안에 지정한 은행에서 대출을 해야 한다. 시간제약이 생겼으니 이제 진짜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매물들을 탐색하고 찜하면서, 내 가용예산 안에서는 (1)넓음(10평이상) (2)지은지 10년 이내임 (3)역에서 10분 이내에 있음,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만족하는 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집들의 전세가가 불과 1-2년전에는 몇천만원 아래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집을 어찌어찌 구한다고 해도,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전세금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내가 주로 하는 일로는 큰 돈을 벌기도 어려울 텐데, 전세건 월세건, 주거 비용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아직 시작조차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막막함을 느꼈다.
이 막막함은 어떠한 계획이나 예측, 그리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비책 1,2,3 등도 좌절시켜버릴 수도 있는 부동산 시장의 힘, 그 시장을 굴리는 자본의 흐름 앞에서 느낀 막막함이다. 그 막막함을 동력으로 이제는 거의 본지가 3달이 다 되어가는 전시에 대해서 써본다.
⟪믿음의 자본⟫은 전시 제목만으로도 현대의 사회에 관한 문제 의식을 갖고 기획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전시장에 비치된 리플렛에는 현재 20대, 30대들에게 화두인 키워드들(파이어족, n잡러, 부캐, 불안정한 노동, 동학 개미 운동, 노동 인식 변화, 코로나 19, 같은 회사 다른 직원? 등.)을 소개하고 그 키워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지면이 있었다. 이 키워드들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현실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오늘날은, 임금노동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본을 축적한 다음, 이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시대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내가 원래 직업과는 다른 일을 하는 자아를 갖고(부캐) 다양한 프리랜서 노무들에 참여한다.(n잡러) 아니면, 임금 노동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금융 소득을 축적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빠른 퇴직을 꿈꾼다.(노동 인식 변화, 동학 개미 운동, 파이어족) 코로나19는 배달과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의 큰 성장을 가져다줬고, 우리 삶도 더 편리하기 만들어주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물건을 취급하고 배달하는 노동자들은 계약직 혹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과로나 배달 사고로 죽어간다. (코로나 19, 같은 회사 다른 직원?) 예술이 이러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전형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러한 막막함을 타파할 비판 정신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무겁고 진지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분위기는 무거움이나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사진들을 스티커붙이듯이 조합해서 만들어진 포스터는 인터넷 상에서 여러 가지 밈들을 소비하면서 우울을 걷어내고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시는 분명 우리 사회의 일면에 관한 것이었지만, 작품들은 이러한 세태를 팔짱끼고 거리를 둔채 분석하지도 않았고, 이 세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무병장수 작가의 영상 작품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향해>는, 정체불명의 크리스털인 '픽셔널 실버 볼'을 판매하는 에이전시를 홍보한다. 영상 속 여성은 나긋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여성의 표정과 말투는 부드러운 확신에 차있다. 하지만, 그 단호함에서 비롯된 신뢰감은 유행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여성의 메이크업을 보는 순간 흔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면 여성이 하는 위로의 말도 현대 사회 전반에 내려앉은 불안함과 막막함을 치밀하게 다독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허한 말임을 알면서도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기묘함이 있는 작품이었다. 영상과 함께 '픽셔널 실버 볼'의 실물(<픽셔널 실버 볼>)도 전시되어있었다. 주 재료인 천연석과 레진이 반사하는 빛의 반짝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사물의 형태와 전혀 닮지 않은 형태 때문에 대체 '픽셔널 실버 볼'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은 '픽셔널 실버 볼'의 투명함과 여성의 다독이는 목소리로 이내 가라앉는다. 홍보 영상이 만들어낸 공허한 위로의 자장 안에서 이 구조물은 영험한 기운을 지닌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강은희 작가의 작품은, 영상 작품<여의도 투어 : 환상의 버블 (투어를 위한 안내 영상)>과 관람객의 참여를 위한 웹사이트 작품<여의도 투어 : 환상의 버블(모바일 투어)>로 이뤄져있다. 영상 작품에서는, 얼굴 없는 목소리가 우리 세계에 만연한 맞춤형 서비스와 그 서비스의 편의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러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여의도의 풍경들과 인공적인 바다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이 얼굴 없는 목소리도, 공허한 약속 같지만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모바일 투어를 위한 웹사이트(yeouidotour.com)에는 몇개의 다른 영상들이 올라와있는데, 그 중 몇 개는 전시장 주변의 공간들을 실제로 탐색하면서, NFC리더기를 사용해서 태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영상들이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영상들은, 안내 영상과는 톤과 결이 다소 달랐는데, 기술과 관련된 특정한 주제(홍채인식을 통한 보안, 빅데이터와 예측모델, 디지털 묘지 등)를 작가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감각했고,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들 같았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상은 <Sunburn, AIBO and Mementomory>이다. (참고로, 이 영상은 NFC 리더기로 태깅을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영상이다.)
이빈소연 작가의 작품들은, 새벽배송, 미라클 모닝, 셀프헬프 등 현대인들이 삶의 편의를 위해서 사용하는 서비스나 자기 관리를 위해서 따르는 루틴들을 주제로 한다. 디지털 드로잉을 페트(PET)에 인쇄해서 만들었는데, 페트의 광택있고 매끈매끈한 표면에 인쇄된 이미지가 주는 감각이 흥미로웠다. 작품을 배치한 방식도 재미있었는데, 큰 나무 판넬의 한 면에 PET에 인쇄한 이미지들을 걸어놓고, 그 나무 판넬의 다른 면에는, 종이에 파스텔로 그린 작은 그림들을 붙여놓았다. 다섯개의 나무 판넬이 전시장 한 가운데에 오각형의 형태로 모여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또 진짜 샐러리, 진짜 케일, 진짜 아스파라거스를 키우는 작은 정원이 있다. (<만사형통 가든>) 판넬의 앞뒤, 심지어 안쪽 공간까지도 알뜰하게 작업으로 채워진 것을 보고, 뭔가 만사에 열심인 한국인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지에서는 작가가 주제를 상징화하는 방식과 더불어 특유의 드로잉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양윤화 작가의 작품은 영상 한 점 뿐이었지만, 아주 강렬했다. 여러 장면들을 좌우/상하 대칭을 해서 빠른 속도로 재생하고, 그것을 다시 역순으로 재생하는 작품이었는데, 좌우 대칭이 된 사람의 얼굴, 몸, 사물, 풍경들이 계속 바뀌면서 이어지니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그 영상에서 뭐가 나왔는지는 전시장을 나서면서 거의 잊어먹었다. (영상 중간에 나와서 절경이라고 외치던 외국인 선생님은 빼고.) 그렇지만,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이미지들의 연쇄가 대칭 이미지를 향한 나의 강박적 욕구에 응답해주었다는 느낌은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 느낌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규칙적인 시퀀스 속에 안온하게 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자본의 흐름을 시각화한 영상이라고 하니, 자본의 상승세에 대한 기대가 계속 만족될 때의 느낌을 구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네 작가의 작품들은 자본의 힘을 믿는 사람들,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들, 맞춤형 서비스의 편리함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체화한 채, 자본의 힘, 자기 관리, 맞춤형 서비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예술이 사회에 말을 거는 또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이 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한, 사회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도려내는 것도, 사회 문제의 원인을 뿌리뽑고자 준비 태세를 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이런 것들이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어떤 비판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노동 가치를 자본으로 환산하는 사고 방식, 시간당 수입을 높이기 위한 브랜딩과 자기 개발을 아예 도려내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냥 자본을 모으고 키우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살면 되는 것일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그래야 할 것 같긴한다. 하지만 적어도 자본의 증식에 대한 믿음, 자본만이 내 삶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과 그를 기반으로 한 각종 투자 경험담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유일한 주류 문화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자본에 대한 믿음을 체화한채 살아가더라도, 그 믿음에 대해서 여러 각도의 질문을 던지고, 그 와중에 양가성을 느끼고, 또 그러다가 자본을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쓸 수 없을지 고민하는 두서 없는 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을 나누는 장이 많아질 수록,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믿음의 자본⟫ 전시 또한 그러한 장을 위한 발받침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